갈 데까지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필요할 때 멈출 수 있는 사람이다.

by 아난다
자기 통제는 분명히 방종과 지나침에 대한 브레이크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브레이크가 차를 달리게 한다는 패러독스를 이해하게 되었다.
차가 최대한의 속도를 내고 질주할 수 있는 이유는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고 자신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달릴 수 있는 것이다.

- 구본형의 <필살기>중에서


혹시나 달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 멈춰서도 편치 못합니다.

혹시나 제때 멈추지 못해 사고를 당할까봐

시원하게 달릴 수도 없습니다.


멈춘 것도, 달리는 것도 아닌 상태를 감당한 대가로 얻는 유일한 수혜는

그 어정쩡함을 유지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자각뿐입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지구를 구한 것 만큼이나 피곤해

정작 힘을 써야할 일조차 제대로 해낼 수 없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뭘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아니 아무리 그만하려고 해도

도무지 멈출 수 없는 내적인 목소리가 있습니다.


내가 그러면 그렇지,

원래 뭐하나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아이지, 내가.

한심한 것도 대물림인가?

아이마저 이 지긋지긋한 한심함 속에 살게 되면 어쩌지?

뭘해야 그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에이, 뭘하긴 뭘해.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이래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니까....


나락은 점점 더 깊어지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는 형벌로 느껴집니다.


어떻게 이리 잘 아냐구요?

어떻게 알긴요. 이야기 속의 나는 바로 저니까요.

큰 아이를 낳고 스물스물 조짐을 보이다가

둘째를 낳으면서

도무지 어찌 해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아주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그다지 평화로운 내면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 내적인 불편함을 잊기 위해

제가 선택했던 것은 '일'이었습니다.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이

미친 듯이 몰두해 성과를 내고 나면

잠깐은 그 지긋지긋한 내적 목소리가

잠잠해지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속 시원히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혹여 그럴 수 있다고해도

과연 그것이 잘하는 일인가 하는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앞서 묘사한 마음의 지옥은 점점 깊어져갔습니다.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저를 구한 것이 바로 이 '엑셀과 브레이크'였습니다.

총체적 난국의 표현이었던 연구원의 첫수업에서

스승께서 엑셀과 브레이크에 대해 설명해주시며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갈 데까지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필요할 때 멈출 수 있는 사람이다.


신기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스승의 이 말씀은

끝없는 심연으로 곤두박질치던 저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당시에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너무나 궁금하기만 했는데요.

이제는 저도 알겠습니다.

그 날 스승께서 제게 바로 '자기신뢰'의 힘을

체험할 수 있는 안전망을 깔아주셨던 거죠.

그리 존경하는 스승의 말이라면

제게 그런 힘이 있다는 말을

믿어봐도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내키는 대로 씩씩하게 달려나갈 수 있었고,

정말로 정확히 딱 좋은 타이밍에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자 숨의 맛이 달라지더라구요.

그 체험 이후 저는 제 자신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용감해져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잘 살아있는 건

멈춰야 할 때 잘 멈췄다는 증거이겠지요?


달려야 할 때 달릴 수 있고,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가벼워질까요?

스스로에게 그 힘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삶은 얼마나 수월해 질까요?


저에게 살림명상은

스스로에게 이 '자명한 진실'을

납득시켜가는 수련입니다.


온 우주를 통틀어

자신에게 가장 비판적인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어마무시 엄청난 모험이 필요한 건 아니더라구요.

지금 여기 내가 할 수 있는 그것에,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엑셀과 브레이크를 실험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으로 가득차 있으니까요.


물론 매번 멋지게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엇박자가 나기도 하고,

가끔은 완전 철퍼덕 주저앉는 일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가 않더라구요.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이 경험을 통해 꼭 필요한 레슨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는

또 다른 차원의

자기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으니까요.

그렇게 제 현장을 지켜가다보니

확실히 알게 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엑셀과 브레이크 체험으로 깨어기 시작했던 '자기신뢰'야말로

제가 그토록 그리워했으나

좀처럼 손에 넣을 수 없던

'행복감'의 원천이라는 것!

누구나 이미 갖고 있는 '일상'이라는 현장이야말로

이 아름다운 씨앗을

건강하게 키워나기 딱 좋은

비옥한 토양이라는 것도 함께!!


https://youtu.be/A06hC89XjwE?si=3YZpwiLgp5x11C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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