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와 혁명가 사이

수련, 나에게 가장 친절하고 편안한 혁명

by 아난다
108배를 하면 30분 정도 걸린다.
물론 훨씬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온몸에 땀이 난다.
낮아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잡념으로 최초의 정성이 흐트러지고,
때로는 고단하여 중도에서 그치고 싶어진다.
그리고 다시는 시작하고 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시작할 때와 같은 초심을 견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조금 익숙해지면 타성이 붙게 되는데,
그러면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된다.

이때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가에서 이것을 ‘발심發心’이라고 부른다.
발심은 초심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개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개혁이 진부해질 때 원래의 개혁으로 되돌아가기가 더 어려운 것과 같다.
인간의 습성이 고려되지 않은 개혁과 혁명은 허구다.
그것은 학살이거나 기만이거나 지나친 망상이다.

- 구본형의 <떠남과 만남> 중에서

끝심이 약하다는 자기평가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작조차 못하는 것보다는 나은거 아닌가 싶은데,

이상하게도 제가 만난 분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습니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물론 제가 모든 케이스를 조사해 볼 수 있었을 리 없으니 성급하게 보편화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중의 한명이었던 스스로의 사례에 집중해볼 뿐입니다.

의심많은 안전주의자인 저의 경우 무언가를 시작했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더이상을 버틸 수 없는 경우였습니다.

필연적인 출발이었던 셈이죠.

당연히 다시는 그 지점으로 돌아가서는 안 될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모험을 시작하고 조금만 지나고 나면

그리 끔찍해서 떠나온 그곳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대개 익숙한 것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즈음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내일 무슨일이 생길까를 두려워하지는 않아도 되었는데...'

거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을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버텨보는 건데...

모든 생각의 결론이 여기로 수렴되며

그 '좋았던' 곳을 제발로 떠나온

한심한 자신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떠나온 지옥이 재현됩니다.


그걸 깨달았다면 다시 되돌아가면 되지 않냐구요?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돌아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운이 좋아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처음 얼마간이 지나면

곧 알게 됩니다.

내가 괜히 여기를 떠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제 경우

스스로가 이 가여운 패턴 속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살아온 시간의 상당 부분을 여기와 저기를 왔다갔다하며 보냈던 것 같습니다.

더 솔직하자면

알아차리고 나서도

완전히 패턴에서 자유로워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머리로 알았다고 해도

수십년 조건화된 몸의 습을 벗어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이것을 받아들이고 나자 하고 싶은 일은 단 하나였습니다.

내 삶을 가두고 있는 오래된 패턴을 벗어내고

나를 살리는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수련이라 부릅니다.


공부를 하다보니 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수련이 불가의 '발심'과 아주 비슷하더라구요.

너무나 자주, 쉽게 잊고 마는 첫마음을 기억하기 위한 저의 처방은 기록입니다.

그것도 아주 솔직한 기록.

모험이 시작되고 습관처럼 떠나온 곳이 그리워지면

방향을 틀기 전에 모험을 시작하던 순간의 기록을 펼칩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피고 나면

자연스럽게 숨이 부드러워지며 편안하게 다음 걸음을 뗄 수 있게 됩니다.

그 무서운 패턴에서 한걸음만큼 더 자유로워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면서요.


그렇게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내가 좋아집니다.

'끝심딸리는 한심한 몽상가'는 간데 없고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운 혁명가'가 나를 향해 미소짓습니다.


파란색 일러스트 학교 입학 설명회 일정 포스터 (인스타그램 게시물) (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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