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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Feb 04. 2022

같은 지도로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

스스로의 꽃으로 피어나는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영광

나는 평범한 인간 속에 살고 있는 위대함에 열광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위대함을 끄집어내는 훌륭한 사람들의 잠재력에 몰두한다.
 나는 평범하고 초라한 사람들이
어느 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싶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고 싶다.
그들이 꽃으로 피어날 때 그 자리에 있고 싶다.
이것이 내 직업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다.

 - 구본형의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중에서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

이제 그만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너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인 듯 합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나신지도 이제 9년차가 다 되어가고 있으니 그들의 걱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조차도 여전히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살아갈 힘과 지혜를 얻고 있는 저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겨,

작정하고 도망쳐보려고 안간힘을 써보기도 했으니까요.

그 역시 필사적이었겠지요? ^^


그러다 스승이 내어 놓으신 그 길 위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계기가 바로 저 단락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롯이 저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요.

스승을 닮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착각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위대한 순간 제 몸으로 직접 느낀 감각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우리가 같은 지도로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한발 앞서 그 길을 가신 선험자의 신호를 일부러 받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다고 스승과 저의 길이 완전히 같을 리도 없습니다.

스승이 인간보편이라는 본질에 기반을 두고 남성직장인의 실존적 과제를 탐구했다면,

저는 같은 기반위에서 여인의 삶을 탐험하는 중입니다.

그중에도 특히 엄마의 시간.


스승과 함께 EBS 고전읽기 방송을 하던 시절,

당시 우면동에 있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마치고 나오던 길 스승께서 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로 인해 변화경영의 외연이 넓어질 것이다!"


스승이 직장인을 위해 주신 지혜를

엄마의 현장에 적용해 보고 싶은데,

이게 가능한 시도인지를 묻는 질문에 주신 답이었습니다.


고백하건데

변화경영사상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엄마로서,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과제를 풀기 위해

변화를 다루는 인류지혜의 전승을

유용히 차용했을 뿐입니다.

동서고금의 지혜의 정수를 한국적 현실에 맞게 정리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주신 스승 덕에

너무 많이 늦지 않게 그 지혜를 삶 속에 적용해볼 기회를 얻었던 것이구요.


어제는 스승께 배운 독서법을 엄마의 현장에 맞게 조율한 독서모임, <느린 독서회>가 있었습니다.

그 성스러운 場 안에서 제게 찾아온 조용한, 그러나 깊은 전율을 느끼며

저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결국은 또 새벽까지 이어지고 말아 몸은 고단하지만,

 그 고단함을 훨씬 뛰어넘은 기쁨의 물결 속에서 온 세포가 한결같이 깨어나 춤추는 것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여기가 나의 현장이 맞구나!

나는 이리 살도록 세상에 보내진 존재가 맞구나!  


세이크리드 프랑킨세스 향이 가득한 방 안에서,

저마다의 설렘과 두려움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하모니 속에 간간히 울려퍼지는 깊은 싱잉볼 진동.

바로 지금 여기,  순간이 춤추는 사람은 사라지고 춤만 남은 현장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꽃으로 피어나는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신

우주의 그 모든 존재에게 절로 감사하게 됩니다.

그 아름다운 현장을 물려주신 스승께는 조금 더 특별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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