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의 현장근육 만들기

아난다의 열번째 화요편지

by 아난다

안녕하세요? 화요편지 독자 여러분!


새 봄 어찌 맞고 계신가요? 저는 그야말로 신입생 모드입니다. 아이들과 저 자신을 돌보며 주로 집에서 생활하던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 조금씩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시기니까요. 새로운 현장에 적응하는 일, 가슴의 울림을 따라 스스로 선택했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해보던 상황이라 내내 의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웬걸요. 우왕좌왕, 좌충우돌, 오르락내리락 초심자가 겪는 거의 모든 함정에 어김없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남는 질문은 늘 ‘나 진짜 할 수 있는 거 맞아? 괜한 욕심부리다 가진 것마저 다 잃는 거 아냐?’.


어제도 결국은 그 질문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그래도 약속한 편지는 써야겠길래 후들거리는 심신을 가까스로 추스러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원고를 열었는데요. 세상에나. ‘엄마’라는 낯선 현장에 처음 들어서던 무렵의 제가 기다리고 있네요.


‘이 흔들림이야말로 오히려 잘하고 있다는 신호인거야. 힘들면 좀 쉬면 되는 거야. 아무런 실수도 없이 한 번에 목적지에 이르고 싶다는 욕심만 버리면 아무 문제없는 거야. 그저 하루하루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그걸로 충분한 거야. 뭐,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어때? 다시 해 보지 않을래?'


부드럽게 눈을 맞추며 내미는 그녀의 손을 슬며시 잡았습니다. 쑥스럽게 웃으며 축 늘어져있던 몸을 다시 일으켜 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꼬리가 살짝 젖었는데 나이탓이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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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왕초보 엄마의 엄마근육 만들기


깨달음이라는 보물을 얻어 일상으로 귀환한 이후로는 내내 행복하게 잘 살았냐구요? 그럴 리가요. 엄마로서의 ‘성장’과 인간으로서의‘성장’이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상생하는 관계라는 가설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신념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두 영역 모두가 이제야 가능성의 씨앗 정도를 발견한 왕초보 수준이었던 상황이니 그 신념조차 흔들리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제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안전한 길이라고 말하는 곳은 어디나 제겐 메마른 사막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도 길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바로 그런 곳에서 저를 살리는 생명수를 발견하고 말았으니 어쩌겠어요. 어떻게든 그 샘이 마르지 않도록 잘 보살피며 어렵게 찾은 씨앗들을 잘 가꾸어가는 수 밖에요.


그렇게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 간 자유시간에 스스로를 돌보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그 에너지를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과 나누는 형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를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기왕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아이들에게 가능한 가장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언제 나는 가장 건강한 에너지 상태가 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겠지요?


저의 경우에는 의미와 재미가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물론 서툴기만한 엄마로서의 일상에서 그런 일을 발견한다는 것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죠.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해야하는 과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책읽기였습니다. 읽고 싶은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던 우드스탁 숲에서의 5년간 은둔했던 시절 덕분에 세계적인 신화학자로 거듭난 조셉 캠벨의 이야기를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부족한 육아정보를 얻기 위해 육아서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점 육아트렌드가 아닌 ‘인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살리는 공부가 ‘육아’에 적용되고, 아이를 위한 공부가 ‘나’를 일으키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위태롭게만 보이던 저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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