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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글쓰기

아난다의 스무번째 화요편지

by 아난다

안녕하세요? 화요편지 독자여러분! ^^

한주 어떻게 보내셨어요? 저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일주일이었습니다.

회복 시간통장1.PNG +
회복 시간통장2.PNG

정리해놓고 나니 정말 엄청나네요. 일주일간 이 많은 일들이 저를 통과해갔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감당하고 있는 정도의 평범한 일상을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이냐구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탄’을 거둘 생각은 없습니다. 가정이라는 낯선 현장에 내던져 저 어쩔 줄 모르고 황망해하던 과거의 저를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24시간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의무’의 공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처리하고 싶은 욕심에 무턱대고 이리뛰고 저리뛰면서도 한 순간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늘 쳐낸 공보다 놓친 공들에 마음이 쓰였으니까요. 그러나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다 소진되고 나서는 한참동안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철퍼덕 주저앉아 쏟아지는 공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내 인생,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스스로를 달달 볶으며 그리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라니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원망을 누구한테 쏟아내야 하는 건지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야심차게 써오던 시간통장도 다 부질없이 느껴졌습니다. 어떻게든 저를 일으켜 세워보겠다고 만들었던 시간통장이었지만, 몇 달째 빈칸으로 남아있는 시간통장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아시나요?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느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도 명료한 바로 그 느낌. 바로 그때였습니다. ‘정말로 때가 온 거라면, 적어도 죽음의 이유정도는 선명하게 밝혀야하지 않을까? 적어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해석해야하는 짐까지 지울 수는 없지 않나? 아니, 내가 왜 이런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고 죽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찾아들고 얽히고 설켜서 어디서부터 풀어내야할지 엄두도 나지 않는 마음속 이야기를 닥치는 대로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논리도 없고, 맥락도 없이 그저 흘러나오는 대로. 죽음을 앞둔 마당이라고 생각하니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치사해서, 유치해서 할 수 없었던 마음속 말들을 뭉텅 뭉텅 마치 구토하듯이 다 토해냈습니다. 위 안의 모든 음식이 다 게워져 나오고, 마지막으로 쓰디쓴 위액까지 다 쏟아내고 난 느낌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죽음 같은 잠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신기하게, 아니 너무나 당연하게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 글쎄 일어나 지지 뭡니까?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있었던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간만에 배도 고파왔습니다. 밥을 해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릅니다. ‘살아있으니까 좋구나!’하면서요.


그리고 한참을 쓰고 먹는 것만 했습니다. 복잡했던 시간통장(사실, 초창기 시간통장은 그야말로 어마무시 복잡했습니다. 깨알같은 살림 스케쥴표는 말할 것도 없이 심지어는 국제 금융동향까지 체크하게 되어있었으니까요.)은 대폭 단순해졌습니다. 어차피 죽으면 암 것도 못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까요.


새롭게 시작한 시간통장의 주제는 ‘오직 살아있기!’였습니다. 벌써 4년 전의 일이네요. 그 시간들을 보내며 그리도 탐내던 ‘활력, 다시 말해 생명력’의 원천이 다름 아닌 제 안에 있다는 걸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늘 안에 있는 생명력의 원천을 활용하지 못했던 이유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배구수가 막히듯 욕심과 두려움의 노폐물들이 흐름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배수구의 흐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악취나는 오물을 제거하는 수 밖에 없듯 생명에너지의 흐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던 마음의 찌꺼기들을 처리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이른 저는 ‘회복하는 글쓰기’라고 부릅니다. 그 작업을 통해 회복한 에너지가 삶의 다른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수순이었구요.


그런데요. 제 안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 모든 수고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일 즈음, 더 놀라운 선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어 눈 딱감고 받아내던 그 마음의 노폐물들이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양분으로 숙성되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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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자기회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와 엄마동지들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 속에서 저는 또 다른 차원의 살아있음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그림자가 만들어준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시인의 기쁨이란 어쩌면 이런 느낌인지도 모르겠구나하며 조용히 벅차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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