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과 불편함
낭만에 대한 오밤중 낙서
1.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서정적인 영화를 보다 보면 마음 깊숙 어딘가가 몹시 아리다. 잊고 살았던 감정이 이내 떠오른 건지, 애초에 몰랐던 감정이었는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지. 멜랑꼴리 하기도 하고 몽글몽글해진다. 그러다 폐부를 찌르듯 아프기도 하다. 아.. 이게 낭만이라는 감정인가? 싶다.
2.
어쩌면 나는 애당초 낭만이라는 감정을, 미디어를 통해 학습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보고, 혹은 노래를 들으며 말이다. 마치 공룡 같다고나 할까? 공룡의 형상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수 있고 그림까지 그릴 순 있을지라도 어찌 됐든 난 공룡을 학습했을 뿐, 보거나 만지거나 소리를 들은 경험이 없다.
원인이 뭐지..
3.
이 시대, 대충 2020년 전후 정도로 한정해 보면, 더 이상 낭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낭만은 공백에서 싹트기 때문에 혹은 반드시 불편해야 되기 때문이다. 비단,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모든 낭만말이다.
단절된 상태에서는 호기심, 걱정, 오해, 그리움 등 도가니탕처럼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키다가 잠잠해지다 요동치기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한다. 그러다, 끝내 혼자서는 매듭짓지 못한 채 그 감정들을 간직하다, 상대를 조우하게 되면 나의 주요한 감정을 직시하곤 한다. 아 나 이 사람 좋아하네, 아니면 어쩌구저쩌구
4.
그러려면 공백이 있어야 한다. 불편해야 한다.
모든 갈등과 불화 다툼이, 결국 우리가 언제든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온다. 어느 정도 혼자 감내하고 감수해야 되는 감정도, 다 뱉어버린다. 참지 못하고 카톡 하고 전화하고, SNS를 들어가 보고.. 감정에 불순물들이 끼면서 애초에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말이 헛나가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편리함과 연결됨이 내 진짜 감정을 직시하지 못하게 안대를 씌운다.
5.
훈련소에 있을 때 편지 써준 사람들이 아직도 고마운 이유. 수천수만 개의 카톡/기프티콘으로 대체되지 않는 이유. 그 편지들의 내용이 유독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내용이라 서라기보다, 그 무수한 공백들이 켜켜이 쌓인 단절 속에서의 전언이었기 때문이다.
공백, 불편함.. 끄적끄적
6.
낭만을 찾기 위한 인위적인 여정은, 태생적으로 '낭만'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하고 다가가려는 게, 어폐가 있듯…
인위적으로 찾는 낭만은 공산품이다. 난 오가닉이 좋다.
7.
카톡 지우고, 인스타를 지우고, 스마트폰 부수고
삐삐 도입하면 바로 낭만 치사량일텐데, 낭만은 이제 미디어를 통해서만 소비할 뿐, 멸종했다. 공룡이다..
8.
그래도 낭만을 배제해버리지는 말자. 그저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다는 표현처럼, 돌이켜보니 깨닫게 되는 감정의 후행 정도로 여기자.
그게 , 나만의 낭만의 정의 그리고 당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