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무새(2)
1.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이 있다. 사실,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퉁치는 마인드셋이 늘 환영받지는 않지만, 좋은 건, 포괄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획일화시켜도 크게 무리는 없다는 생각이다. 근데 나쁜 건 단선적으로, ‘나쁜 게 나쁜 거지’하고 퉁칠 수 없다. 꽤나 세부적이고 지엽적이며 나쁘게 된 계기와 경위, 파급효과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으면, 내가 좋은 감정이 들면,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가타부타 글로 길게 풀어쓸 게 없다. 그 순간을 만끽하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겼다면 나중에 곱씹는 게 전부다.
2.
모든 좋음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즐거움, 기쁨, 환희, 행복 등을 굳이 분별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반면에, 나쁨은 서로 몹시 다르다. 분노, 우울, 후회, 증오, 미움, 좌절. 나쁜 게 나쁜 거지라고 퉁칠 수가 없다. 그런 표현조차 없다. 그래서 글로 풀어쓸 게 많다. 자신의 감정을 분별해 내고, 일련의 사건들의 상관관계를 찾아보거나, 인과관계가 있는지 심술도 부리게 된다.
3.
사실 좋은 감정, 좋은 것의 궁극적 감정이라 여겨지는 ‘행복’은 웬만하면 타인과 공유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좋은 감정, 좋은 일, 행복한 일은, 불특정 다수나 친구 등 제3자에게 굳이 알리지 않아도, 내 속에서 그 감정들이 잘 보존된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일이 있으면 보온병처럼 그 일들을 최대한 내 품에 머무르게 하는 게 좋다. 여력이 되면 주변에 두세 잔 나눠주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라는 말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대체로 반대로 해석하는 게 맞아떨어진다. 기쁨(행복)을 나누면 질투를 하고, 슬픔을 나누면 내심 좋아한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가족이나 한 손에 꼽을 몇몇의 관계 아니면 거의 그렇다. 반박 시.. 내가 꼬인 사람으로 할게. 누군가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행복을 경솔하게 아무에게나 발설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친한 친구이더라도, 나의 행복을 공유하는 방식에 있어서 매우 조심스뤄야 한다. 행복을 기안지에 써서, 결재라인을 타고 참조도 달 필요가 전혀 없다. Strictly Confidential로 가자
4.
행복을 좇고 있는 사람을 보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행복에 대해 쫓기고 있을 때가 많다. 정작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행복을 인정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 내가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누군가에게 비치거나,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거나, 행복에 대해 조금이라도 강박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역설적으로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보온병은 차갑게 식고 따뜻한 물도 금방 동난다.
5.
행복의 정의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안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인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시스템이 가정이고.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좋은 가족/든든한 가정이 필요한 이유도, 각자의 행복을 배가시켜서 나누고, 슬픔을 나누어 소멸시키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는, 가정 밖의 제3자에게는.. 무소식이 곧 희소식이 된다. 뉴스만 보면 다 이혼하고 가정 다 파탄 난 것 같지만, 잘 사는 부부들이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누가 봐도 개인에게 행복한 일인데, 밖에서 인정을 갈구하는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가정에서의 선순환 구조가 깨졌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6.
근데 1인가구가 많은 요즘은, 행복한 일이 있어도 그걸 안전하게 선순환 시킬 수 있는 구조가 없으니, 행복무새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나 행복하고 싶어, 진짜 행복이 뭘까 블라블라
그래서 결국 어떤 식으로든 행복을 선순환시킬 수 있는 '안전한' 구조를 갖추지 못한 개인은, 이따금 사람들과 머리 맞대고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하며 행복의 정의와 범위, 그 진정성을 솔로몬처럼 심판하려는 행위를 이어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