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간탐구

시간 누수

생산자가 되자

by Evan greene

1. 단언컨대, 삶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다. 결국 돈 역시도 시간 앞에서는 열위한 존재일 뿐임을, 나이가 들수록 조금 더 빈번히 깨닫게 된다. 사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행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혜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도, 결국 돈도 시간을 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되도록이면 돈으로 시간을 사는 행위를 점점 확장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대처마저도 결국 시간의 유한함을 못내 아쉬워하는 미봉책에 불과함을 느낀다. 영생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전혀 없지만, 아무래도 (기대수명을 늘린다거나) 시간의 총량 자체를 늘릴 수 없는 명확한 한계에 다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더불어, 하루를 살아가고 해를 거듭할수록, 내가 그 시간들을 잘 보냈느냐?라는 평가와는 무관하게, 종국에는 내가 죽음에 도달해가고 있다는 진실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함의 엄습과는 별개로, 시간의 희소함이 조금 더 명징하게 다가온다.


2. 따라서 시간을 누군가에게 할애하는 것은, 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헌신적인 행위가 된다. 정해진 총량 안에서, 나의 생명력을 누군가에게 할애하는 것이니, 그리 과장된 표현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소중한 사람들에게 시간을 쏟지 못하고 돈으로나마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섭섭함을 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가족, 몇몇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서로가 전처럼 '시간을 쓴다'라는 이 헌신적인 행위를 쉽사리 할 수가 없게 된다.


사실, 현대사회의 속도에 발맞춰,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근로자가 되려는 노력 자체로도 이미 많은 시간이 할당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생성형 AI를 통해 대처하고 있지, 여의치는 않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읽고, 또 가끔 이렇게 무언가를 끄적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사유하는 시간을 따로 갖는다는 것이, 한 때는 일상적이고 평범했으나, 이제는 사치스러운 행위가 되어버린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찾아오는 이런 긴 연휴들이 참 좋다.


3. 시간이 소중하다는 관념을 유지한 채로, 논의를 확장하고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보면, 전개할 수 있는 방향이 다양하다. 앞으로 부모님과 만날 수 있는 날들에 횟수를 부여해 본다거나, 훗날 내 아이가 자라나는 시간을 지켜볼 수 있는 기간을 가늠해 본다거나 등등..


그래서 나는 요즘 유독 숏폼 콘텐츠에 시간을 많이 쏟고, 기계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는 행위가 상당히 자기 파괴적인 행위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도파민의 과잉분비로 뇌의 분비체계를 망가뜨리는 행위를 넘어, 가장 희소한 자원인 시간 자체를 야금야금 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실상은 콘텐츠가 나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고 좀 더 정확히는 숏폼 콘텐츠 플랫폼과 콘텐츠 생산자들이 이 역학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내 시간을 내가 보는 앞에서 가지고 가는 것이다. 나는 초원을 거닐고 있는 한 마리의 순진무구한 양이고, 관련 회사들과 플랫폼 위의 생산자들은 시간 사냥꾼이라는 구도로 상상하면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리 쓰든 저리 쓰든 시간은 다시 복구되지 않으며, 특정 시점의 시간은 영원히 소실되어 버린다. 따라서 우리의 시간은 조금 더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할 자격이 있으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4. 경험적으로, 현실에서 작동하는 유일한 대처는, 결국 콘텐츠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자유의지로는 숏폼 콘텐츠의 중독성을 끊어내는 것은 불가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콘텐츠의 전달 방식과 대상에 대한 고민은 짧게 하고, 가장 익숙하고 품이 덜 드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생산해야 된다. 나 같은 경우는 결국, 이런 소소한 글쓰기가 콘텐츠 생산의 일부가 됐다. 마치, 건강을 위해 만든 강인한 육체가, 이성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사실 글을 쓰는 목적에, 이러한 동기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고 있기에.. 비로소 숏폼 콘텐츠로부터 나의 시간을 지키기 위한 방파제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문제라고 명확히 인지하지만 개선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묘수를 둬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행복을 위한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