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불필요한 말들이 있다. 사실일지라도 굳이 발화되어서 좋지 않은 것들, 외모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고, 기준은 각자 상이할 것이다.
내게는, '세상 참 좁아.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표현도 불필요함에 해당한다.
1. 우선 세상이 좁다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인데..
1-1'좁다'라는 표현 자체가 사실, 물리적 공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한 개인이 인지한 관념 속 세상의 범위에 대한 관용적 표현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애당초 이를, 마치 ‘겨울은 추워’, ‘비 와서 습해’ 정도의 단편적 사실을 표현한 문장으로 여긴다. 물론, 물리적 공간의 확장이 일어나면 개인의 세상도 넓어진다. 외국을 나가, 기묘한 자연경관이나 이지적인 사람들을 보면 세계관이 일시적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하지만 그 경험은 한시적이며, 내가 발을 내딛는 거리와 동네, 교류하는 사람들은 한정되니 우리는 이내 특정 시공간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한 인간의 관념적 세상은, 예외 없이 좁아지고 만다. 최소한, 스스로를 여기 있으면서도 없다고 여기는, 양자역학의 중첩 상태로 인지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니 물리적 세상은 넓더라도 관념 속 세상은 좁기 마련이다
1-2 세상이 좁다에 대한 철학적 해석 외에도, 직관적으로 공감될만한 근거도 있다. 보통, 우리가 업계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이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업계를 '유독 좁은 것처럼' 표현하는 경향을 띤다. 하지만 나는 여태, 패션/엔터/요식/금융/미술/바이오/스포츠/의료/교육/건축/언론/무용/음악 등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업계를 넓다고 말하는 사람을 도통 마주친 적이 없다. 이것이 방증하는 바는, '우리 업계가 좁아요'라는 말은 꽤나 상투적이며, 실은 우리가 업계가 좁다고 느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일생에는, 하나의 업계, 많아야 두 개 정도를 깊숙이 경험하고 관여해 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업력이 쌓일수록 좁게 느껴지는 것은 상식적이며, 괜히 내 업계가 유독 소문도 더 빠르고, 말조심을 해야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내가 있었던 군대가 제일 힘들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내가 있는 업계가 유달리 좁은 것이다. 논리적 완결성은 떨어지나 나름의 타당성을 갖게 되는..
2. 아무쪼록 나는 '세상이 좁다'라는 명제를, 변하지 않는 상수처럼 논증하려 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세상 참 좁아. 착하게 살아야 돼'라는 말의 불필요함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이 문장은 의도를 하지 않았더라도 '세상이 좁지 않았다면 착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내포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착하게 살려고 하는 이유가, 올바른 가정환경에서 빚어진 인성 덕분인지, 지금 함부로 했다가 좁은 세상으로 나중에 어떻게든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나 조심성 때문인지를, 밝히는 것 자체가 '불필요' 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다른 시공간에서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는 약속이, 하나의 관계가 다른 관계에 영향을 전혀 주고받지 않는 규칙이 있는 사회였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지금보다는 조금, 덜 친절하고 덜 상냥했을 것이라는 것을.
애당초, 한 인간의 '착함'은 내적인 선한 의지와 기질 외에도, 법과 사회 규범, 머리맡의 CCTV, 나의 착하지 않음이 훗날 손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 등 수많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한 산물이지 않은가.
3.'세상 참 좁아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단문을 가지고, 혹자는 시답잖은 부분을 두고 침소봉대하고, 편집증적으로 파고들려고 평할 수도도 있겠다. 그럼에도, 내게는 그 문장이, 인간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침침한 구석을 굳이 들추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 합의를 어긴 사람의 실언 정도로 느낀다.
마치, 연인 사이에, ‘나 왜 좋아?’라고 했을 때 '예뻐서 좋아 ‘라고 답하면, '더 예쁜 여자 나타나면 vs 나중에 안 예뻐지면'이라는 꼬리질문을 받고서, 내가 실언했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특유의 예쁨을 짚어내거나, 어떤 고유한 특징처럼 나름의 대체불가능함을 요인으로 꼽지 못한다면 '그냥 좋아'라고 맹목적으로 표현하는 게 낫다. 그러니 그 나름의 착하게 사려는 이유가 없다면, 세상이 좁아서라는 이유는 사족이 된다. 그냥 착하게 산다고 해라
4. 일대일 관계의 실언은 즉각적으로 골치를 아프게 하지만, 조금 더 광범위한 인간관계에서의 불필요한 말은, 뱉어지고 나서 그것이 실언이었는지 알아채기 힘들다.
생각을 전달하거나 감정을 표현할 때, 나의 표현이 종속변인이라는 것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눈치 빠른 사람들은 상대가 저의를 숨기고 불필요한 부분을 생략했어도 다 안다.
정리하면,
각자의 언행이 늘 도덕적 순결함으로부터 기인해야 된다는 주장은 전혀 아니지만, 어떤 언행의 동기가 반드시 선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굳이 들추지는 않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한 처세이다. 쌍방이 이미 인지하고 있는, 선하지 않은 동기를 발화하는 것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만큼 신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