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1. 헤어질 결심
언젠가부터 회사가, 억지로 관계를 질질 끌고 가는 연인 같이 느껴졌다.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지만 헤어지자고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감정의 답보상태에 있는듯한 느낌이랄까. 이따금, '그래, 지금도 나쁘지 않아' 하며 마음을 다잡으며 지내보기도 하지만, 나의 애매모함은 타인에 의해 쉽게 발각되곤 했다.
누군가 '요즘 잘 만나고 있어(잘 다니고 있어)?' 물어보면, '어 뭐.. 괜찮아 뭐..' 하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고, 애써 외면해 온 감정들이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어보면, 현대인은 내가 어떤 지위를 얻게 되면, 사랑은 쉽게 뒤따라오는 전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사랑에도 응당,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 주장하고 쉽사리 헤어질 결심을 해버러셔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주장에, 박원의 <노력>이라는 노래 가사로 응수해 버리는 쪽에 가깝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ㅎㅎ 연인에 대한 마음이 떠나려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일 자체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가볍게 생각해보기도 하고, 회사 밖에서 가치를 두기도 하고, 그 싸이클을 몇 번 돌다 보니 어찌어찌 5년이 흘렀고, 두 달 전 이 관계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2. 소회
5년.. 5년.. 기성세대분들은 한 직장에서 평생을 근무하시던 분들도 많기에, 5년은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특정 산업을 꽤나 깊이 있게 파고들고 그 사이 희로애락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힘들 때도 많았다. 높은 업무 강도로 악몽을 꿀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시기도 있었고, 업 특성상 교활하고 비열한 적군/아군인척 하는 적군들을 상대하며 내상도 많이 입었다. 그럼에도 이 관계를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은, 전적으로 일이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잘 맞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담대한 발언인가. 다행히도 나는, 일이 적성에 맞았기에 재미를 느꼈고, 몰입하게 되니, 나름 또 너무 못나지 않은 사람이 됐다. 물론, 겉보기에는 우두한 일꾼 혹은 착실한 노예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 만족하며 살았다. 더불어, 존경할만하고 배울 수 있는 선후배들과 함께였기에 또 많은 배움과 성장이 있었다. 또 그들로부터 격려와 인정을 받으며 회사생활을 했다는 것에 내심 혼자만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래는 직장생활을 하며 부서를 옮기고 이직을 할 때 주고받은 대화들이다.
3. 퇴사할 결심
마땅한 계획 없이 회사를 나오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용기가 대단하다는 혹은 가상하다는 엇갈린 뉘앙스의 평을 전해주곤 했다. 하지만 나의 감정선은 조금 다르다.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는 강인한 의지와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보다는, 이별을 결심한 사람의 냉정함에 가깝다. 더 이상 좋지 않아서,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결정했을 뿐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언젠가는 끊어내야 하는 관계들이 있다. 그저, 그 수많은 관계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아쉬움, 미련, 후회.. 이마저도 도돌이표처럼 예견된 감정의 수순이고, 이내 망각하고 또 살아진다.
퇴사도 그저 지금껏 겪어온 숱한 만남과 이별 중 하나일 뿐, 특별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