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선택적 생명 존중과 허위의식
아침 여섯 시 삼십 분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달팽이를 만났다. 모든 것들이 깨어나기 직전, 아침의 고요함 속에서 길을 걷다 달팽이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었다.
달팽이는 길 한복판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녀석의 속도로는 앞으로 최소 1시간은 더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멀뚱멀뚱 그 녀석을 빤히 쳐다보며 달팽이와 일방적인(?) 시간을 보내다 보니 5분 정도 지났을까? 괜히 요 녀석이 행여나 차에 치이거나 밟혀 죽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___.
어쨌든 나는 동심으로 돌아가 쪼그려 앉은 채 달팽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피부를 확대하여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달팽이의 밑바닥(?)에서 분비되는 점액이 길에 묻어 나오는 게 보였고, 문득 달팽이 크림이 떠올랐다. 달팽이를 어떤 평면 위에 올려놓고 자취를 따라 남겨지는 점액을 추출하는 것인지, 달팽이를 으깨기라도 해서 크림을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과연, 내 사고 범위 내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들도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달팽이의 생명을 보호하는 집단이 하나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와 달팽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닮은 점이 없다. 강아지는 사람이 지향하는 미(美)나 멋에 부합하는 면이 많다. 또한 동물 중에 영리한 편이라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강아지의 생명과 권리에 대해 주장하는 단체와 일반 시민들의 의식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달팽이의 외관은 현대인이 추구하는 미의 기준과 배치되는 측면이 많다. 부드럽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다. 설령 반려동물로 키운다고 하더라도, 가둬서 키우지 않고 방바닥을 활보하게 뒀다가는 너무 연약하고 보잘것없어.. 밟혀 바스라 질 수 있다.
하지만 달팽이 요 녀석이.. 어느 환기도 잘 안 되고 햇볕도 들지 않는 공장에서 일평생을 착취당하며 노역하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면 좌시할 수 없다!.. 달팽이의 외관이 조금만 컸었다면? 조금만 눈이 초롱초롱하고 부드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면? 달팽이가 조금만 더 빨라서 인간과 어느 정도의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어쩌면 이토록 무신경하고 무관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강아지에 대한 관심 증대가 인간의 공감능력을 다른 생명으로 확장시키는데 크게 공헌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다른 생명에 대한 생명존중이 지극히 선택적이며 우리 감각(시각, 촉각 등)의 한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내가 달팽이의 생명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변호사를 선임하고 화장품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 어떻게 될까? 말을 타고 풍차로 맹렬히 달려가는 돈키호테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회사 주요 제품의 위협을 가한 죄로, 임직원과 가족분들은 물론이고 달팽이 크림을 애용하는 사람들에게도 공분을 사고, 심지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쓴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 달팽이는 인간에게 연민을 일으킬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ㅠㅠ 나 역시 몇 시간 지나고 나면 달팽이의 권리를 위해 글을 쓰며 아침잠을 허비했던 나 자신이 오히려 안타까울 것 같다.
하지만 상당수의 생명들이 인간을 위해 음식이나 장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시대에서, 인간의 생명존중을 받을 만한 요소를 하나라도 갖지 못하여 우리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생명이 비단 달팽이 하나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인간의 선택적 생명존중을 좌시할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의 생존, 절대적 빈곤에 빠져 있는 일부 인류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다른 종(種)의 생명을, 나아가 반려동물도 아닌 생명을 보호하자는 목소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특성을 우리 인류는 경험적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어쩌면 선택적 생명존중을 가벼이 넘겨도 대수롭지도 않을 일이다.
다만,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과 그에 수반되는 실천이, 인간 스스로에게 지성인이라는 의식을 부여하는 수단이 되거나 혹은, 특정 생명에 대한 존중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의 한계를 근거로 주장하며 여전히 다른 생명을 먹고 장식으로 쓰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추악한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아침.. 길 위에서 조우한 자그마한 생명체로부터 인간을 돌아본 것은 그저.. 나의 글쓰기 욕구에 대한 발현과 지적 허영심일까?
+2018년 체코의 프라하로 놀러 갔을 때 이름 모를 광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돼지 멱따는 기괴한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단체인지 유독 돼지의 생명에 민감한 사람인지, 그냥 채식주의자인지 모르겠으나 가판대에다가 돼지가 도축되는 장면을 틀어 놓고 피켓을 들고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경도되어.. 다른 요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거나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았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모이는 거리에서 돼지가 도축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가치관과 이에 대한 지향을 거리에 나온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달팽이도 유명을 달리할 때, 인간의 연민을 자극하는 구슬픈 소리라도 낼 수 있었다면, 프라하에서 많은 사람들의 저녁시간을 침해할 수 있는 반열에 올랐을 텐데….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