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사람을 잘 미워하지 않는다. 사람이 미워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워하려 한다. 예컨대, 내가 강아지고 당신이 원숭이라면, 우리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강아지가 아니었다면 원숭이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저 강아지로써 원숭이를 조우한 상황 자체를 원망할 뿐이다. 만약 내가 개미였고, 당신이 진딧물이었다면 우리는 상리공생했을 것이다.
2.
인간관계에 균열이 생기면, 귀책사유를 자신이나 상대의 언행에서 찾을 때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균열은 우리가 속한 상황의 변화로부터 기인할 때가 많다. 이는, 그간 숱한 인간관계를 맺어오면서 내린 귀납적 결론이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군대에서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전방으로의 파견을, 나와 군대 동기 중 한 명이 꼭 가야만 했을 때. 나는 그들과 마냥 친구이며 동기일 수 없었다. 나의 최선은 그저 상황만을 미워할 뿐, 그 미움이 사람으로 전이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3.
당신이 냉혈한이라고 생각했던 회사 상사도, 누군가에게는 퇴근길에 치킨 사들고 가는 자상한 아버지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는 소탈한 벗이다. 당신의 눈에는 그 사람이 모순적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당신도, 나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결혼을 하면 소원해지게 되어 있고, 한 때 원수처럼 지낸 사이도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애초에 다층적이고 입체적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마냥 싫지만은 않아 졌다. 내가 진짜 친하게 생각했는데… 내가 진짜 믿었는데…..라는 말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일 때가 많다. 그러니 공연히 사람에게서 쉽게 상처받지 마라. 그러려니 하면 또 다른 시절 온다. 또 다른 사람 온다.
4.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 차라리 우리는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상황을 미워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의사라면, 내가 아파야 돈을 벌게 되고,
당신이 보험사 직원이면, 내가 아프지 않아야 돈을 벌게 되고,
당신이 변호사면, 내 인생이 파란만장해야 돈을 벌게 되고,
당신이 수리업자면, 내 물건이 고장 나야 돈을 벌게 되고,
당신이 학원강사면, 내가 시험에 떨어져야 돈을 벌게 된다.
나는 당신이 이기적이고 냉혈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본주의의 생리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을 수긍할 뿐이다.
5.
여의도에서 수많은 기업들과 기관투자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자본주의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여의도의 자본주의는 간단명료하다.
Give and Take.
누군가는 이 사실을 비정하고 쓸쓸히 바라볼지도 모르겠지만, 난 오히려 심플하고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상황’에서 만나는지에 따라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악연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
6.
내게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좋아함’을 방증하는 표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잘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을 쉽게 좋아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