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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Nov 06. 2023

자기 객관화


종합 건강검진 검사 항목에 자기 객관화 검사 하나 추가하자.


또 뭔 헛소리냐고? 요약하면,



A. 자기 객관화 검사는 피검사만큼 중요


: 피검사 시기 놓치면 건강이,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자기 객관화도 시기를 놓치면 인생이 심하게 꼬일 수 있음.



B. 혼자 하기 힘듦


: 보통 자기 객관화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엄밀히는, ‘주관’으로 스스로를 ‘객관’화한다는 게 어폐가 있다.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은 될지도? 근데 스스로 메타인지가 뛰어난 지도 분별하려면, 자기 객관화가 선행되어야 함.



1. 패션


[1막]


20대 초반, 옷이랑 꾸미는 거에 관심이 많았다. 매 끼니를 김밥 한 줄로 때우며, 돈을 모아 옷을 사는 시기도 있었다. 특히, 헤어 스타일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비니, 스냅백, 가르마펌, 탈색, 모히칸, 투블럭 웬만한 거 다 해봤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하루는, (여대생들과) 미팅이 잡혀있었는데, 포마드 머리하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머리만 4번 감았다.



꾸미다 보니까 센스도 늘고, 자연스럽게 옷을 잘 입게 되었다. 그러다, 나 혹시 뭐 되나? 싶어서, 모델 기획사에 기웃거리다 워킹 테스트도 봤다. 근데 본투비 모델들 보면서 바로 소거하고 학업에 방점을 두었다.(자기 객관화 1차)



여차저차하다, 쇼핑몰에서 피팅모델도 2년 남짓 했다. 얼굴 안 나오는 곳이었는데, 하루는 작가님이 이번에 새로운 컨셉인데 얼굴 나와도 괜찮겠냐고, ‘난 괜찮다’고 했고 찍었다. 근데 위에 상급자가 ‘이 새끼 뭐냐고’ 결국 쭉 얼굴 없이 했다.(자기 객관화 2차)



그래도 뭐.. 옷 잘입었’었’다. 패션 센스 좋았’었’다.



[2막]


ROTC 시작하고 장교로 임관했고, 전역 후에는 바로 회사에 다녔다.



제복(2년) -> 군복/정복(2년 4개월) -> 정장(3년)



햇수로 8년. 평소에 사복 입을 일이 없어지면서 야금야금 패션센스가 사라졌다. 대충 하고 나가는 날에도 ‘난 꾸안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에, 뚱딴지같은 조합으로 옷을 입었더니,



‘무릎 다 나온 회색체육복에다 검정 가죽재킷을 입고 왔어?’


‘이 신발 버려라.. 또 어디서 산 거야?’



인지부조화가 왔다. ‘어 나 옷 잘 입는데.. 뭐지?‘ 패피라는 페르소나에 점점 균열이 생기다, 최근에서야 자기 객관화의 실패라는 것을 깨달았다.



3막 이제 시작이다. 근데 옷 어디서 사냐..



2. 다른 사례들



[소개팅용 사진]



남자들 중에서 소개팅해달라고 하면서, ‘나 소개팅용 사진 없는데’하고 곤조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근데 말이다. 회사에 이력서 낼 때, 인사담당자한테 ‘증명사진 없는데 ‘하고 사진 빼고 제출하면 인정. 근데 귀찮고 부끄러워도, 왁스 바르고 미소 머금고 찍잖아



소개팅용 사진도 마찬가지다. 귀찮고 싫어도 중개인이나 상대방이 ‘필요’하니까 찍는 거다. 돈 좀 주고 스튜디오 가서 찍거나, 사진 잘 찍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카페라도 가는 게 좋다. 자기객관화해서 이력서 증명사진이라고 생각하면 홀가분하다. 내가 찍어주게ㅎㅎ



[나는 솔로]



‘와 저 패션 뭐야, 여자들이 진짜 싫어하는 스타일..’


‘성격 왜 저래 진짜?...’



누가 봐도 사람들이 싫어할 특징을 본인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소위 말하는 빌런. 근데, 단언컨대 그들도 남이 싫어할 걸 알면서, 일부러 그러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상대가 싫어할 걸 알면서도 행동하는 사람은, 심통 난 연인이나 심술 난 아이들 정도라 생각한다.



앞서 말한, 나의 패션이 그랬었던 것처럼, 그들은 그저 자기 객관화가 안 돼서 그런 것뿐이다. 나도 진짜 꾸민 거라고 생각하고 밖을 활보했다. 가끔 같이 다니기 부끄럽게 해서 미안하다…



그들도 외부적인 환경 때문에, 타인과 교류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뿐이다. 아니꼽고 아니꼬워도 너무 박하게 그러지는 말자. 모두가 한때는 바라만 봐도 웃음을 주는 아기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빌런도 악의는 없다. 아마도?



3. (급) 마무리



어차피 건강검진 항목에 자기 객관화 검사 안 들어가겠지. 각자 하자. 자기 객관화는 ‘한다’(능동)기 보다는, ‘된다’(수동)에 가깝다. 그래서 노력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타인과 교류하며 지내 과정에서, 우연한 몇몇 기회로 수반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노오력은 본인도 해야 되겠지. 나도 늘 하는 중.



객기 부려도, 자기 객관화되면 패기고


자만심도, 자기 객관화되면 자신감이고


자기 객관화되면, 자존감이 떨어질 일도 오를 일도 없다.



그나저나 오늘 날씨 왜케 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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