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를 한다는 느낌
1-1 어렸을 때, 도서관에서 많이 놀아서인지, 자연스럽게 독서습관이 길러졌다. 덕분에 독서에 대한 거부감이 0이다.
대학 들어가고는 지적호기심이 폭발해서, 한 번에 3, 4권을 돌려 가며, 질릴 때마다 바꿔 읽었다.
뇌리에 스치는 몇 권의 책들… 리처드도킨슨의 ‘만들어진 신’,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알랭드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루스 베니딕트의 ‘국화와 칼’.. 등등 거를 타선이 없네..
특히 밀의 ‘자유론’은 정말 애정했고 위로도 많이 받은 책이다. 머리맡에 두고, 몇 달 동안 아껴 읽으며, 한편에 내 생각을 메모하고 잠에 들곤 했었다. 그 책의 촘촘한 논리구조를 볼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지금은 한 달에 1,2권 읽는 수준이지만, 그때는 활자중독이 참 심했다. 책에서 습득하면 효율이 떨어지는 정보들도 독서로 해결하려 했으니 말이다.(연애도 글로 배움)
1-2 하루는,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 책 어때요'하고 물었는데, 딱히 생각을 정리 안 해두기는 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생각보다 더.. 내 답변이 형편없었다.
'음.. 재밌어요… 읽을만해요. 뭐~~ 이렇습니다.'
반추해 보면, 독서를 하는 ‘느낌’에만 매몰됐었던 책들이 많았다. 서점 가서 책을 무더기로 사 오고 막상 집에 오면 펴보지도 않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다. 모두 지적욕구를 채운다는 ‘느낌‘을 내고 싶었던 것에 불과했었다. 그 일 뒤로는, 책을 읽으면 반드시 간단하게라도 서평을 쓰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이제는 책에 대한 감상(感想)을 별도로 정리해야만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완성된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보면, 독서라는 행위가 헬스와도 굉장히 닮아있다. 헬스가 운동하고 먹는 것까지가 운동의 완성이며, 운동만 하고 영양 보충하지 않으면 노동이 되는 것처럼, 독서도 글을 쓰는 등 일련의 행위가 수반되지 않으면 노동이 된다.
분별하자.
2. 힘들다는 느낌
2-1 일을 하다 종이에 손가락을 아주 깊게 베인 사람이 응급실에 찾아갔다. 담당 의사는 환자에게 1~10까지 통증의 정도를 물었고, 환자는 8이라 대답했다. 상처가 꽤나 깊었기에, 환자는 속히 치료받기를 원했고, 그 순간만큼은 지옥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도 그 환자의 고통은 8에 미치지 못한다. 고통에도 절대적 '정도'가 있다. 실제로 응급실에서 책정하는 8점의 고통은, 산모가 아기를 출산할 때 느끼는 정도라 한다.
(육체적 고통이 직관적이라 비유로는 들었는데, 내가 주안을 두는 싶은 것은 정신적인 고통 혹은 힘듦)
물론, 절대적 고통의 크기가 작으니, 보다 작은 고통이 무시되거나 폄하되어도 좋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부주의하게 움직이다 팔에 생긴 생채기도, 책상에 부딪혀서 생긴 다리의 멍도, 고통이니 보살펴야 마땅하다.
2-2 요점은 고통에도 ‘절대성’이 있으니, 그 점을 분별하여 극복할 수 있는 고통에 너무 무력하게 당하지 말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당당히 살아가는 분들이 정말 많다. 하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도 셀 수 없다. 당장, 유튜브에서 ‘장사의 신’을 치고, 벼랑 끝에 서있는 자영업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정말이지 난 힘들지가 않다.
(가끔 힘들 때도 있긴 함)
물론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있다. 근데 이것도,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식사를 통해 보충하기 힘든 영양소를 따로 영양제로 보충해 주면 딱히 안 피곤하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운동과 영양제를 먹지 않고, 피로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응석이라 생각한다. 둘 다 해도 피곤하다면 미안하다.. 커피 먹자..
분별하자.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함으로써 위로받고 싶은 ‘느낌’을 내고 싶은 거라면 위로는 해줄게. 근데 인간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끈질기고 강하다. 그러니 스스로를 절대 먼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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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이리 눈이 감기냐..
난 잠을 참기가 너무 어렵다
누우면 1분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