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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Nov 18. 2023

외모의 중요성과 활개 치는 외모지상주의

1. 시대 주류 사상에 대한 반박



천동설을 진리로 여기던 시대 갈릴레오는 호기롭게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는 무수한 수모와 시련을 겪다,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으며 결국 여생을 가택에 구류되어 보내게 된다.


지구는 구(球)가 아니라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Flat earth theory도 공존하는 21세기에서 보면, 태양이 지구를 돌든, 지구가 태양을 돌든 뭐 그리 아니꼬웠다고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지 싶다. 리오형 고생했어..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 주류 사상에 반하는 의견을 표하는 것은 진위 여부를 떠나 무모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가 여우를 호랑이라 부르면, 나도 가끔은 ‘네 호랑이 맞네요’하고 허허 웃으며 넘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만큼, 언급했을 때 돌팔매질 맞기 쉬운 소재가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외모에 관한 것이다.(외모의 중요성, 외모지상주의)


2. 외모의 중요성


외모는 중요하다. 아기들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게 끌린다.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캠페인에도 예쁜 아이들이 등장한다. 부자가 되려면 외모를 가꾸라는 말도 있으며, 범죄자도 외모가 매력적이면 팬이 생긴다.


하물며, 외모는 설명이 필요 없는 재능이기도 하다. 우사인 볼트씨는 100미터를 전속력으로 달리고, 김범수씨는 고음을 지르실 때 재능이 발한다. 근데 차은우씨는 서있으면 된다. 목을 풀거나 뛸 필요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모의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를 열거하면 끝도 없다. 날개를 휘황한 찬란게 뽐내는 공작을, 멋진 갈기와 덩치를 가진 사자를, 나아가 그들의 생태계를 외모지상주의라 비판하지 않는다. 외모가 중요하다는 것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물에도 예외가 아니기에, 어쩌면 하나의 진리라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깨가 넓은 남자, 골반이 넓은 여자에게 끌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다.


따라서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없는 의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구태여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쩌면 타인에게 자신을 특별하게 비추기 위한 수단으로 삼거나, 스스로의 외모에 만족스럽지 못하기에 상대의 외모도 보지 않는다고 선수 치는 경우로 나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외모를 너무 밝히는 사람만큼이나, 노골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께름칙한 면이 있다.


3. 자취를 감춘 외모지상주의


외모는 중요하다. 주장보다 사실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외모를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외모지상주의’를 신봉하거나 당당히 ‘얼빠’를 자처하고 다니거나, 여자는 일단 예뻐야 한다라고 떠들고 다녀도 몰매까지는 맞지 않는다.


요즘은 기술의 발전으로 포토샵, 각종 필터로 사진 속의 나와, 현실 외모와의 괴리가 전보다 커졌고, 성형/시술은 대수가 아니며, 본판 보다 더 꾸밀 수 있기에 외모를 가꾸는 것도 노력의 범주에 포함됐다. 더불어, 외모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은연중에 확산되었다.(외모지상주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카리나씨를 '신'이라 부른다.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몇몇 압도적인 미모의 여배우들도 대중으로부터 ‘신’이라 불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게 맞나? 생각은 들지만 지금처럼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시대에는, 다음 세 가지 이유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기도 어렵다.


첫 번째 이유는,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게 되면, ‘외모의 중요성’ 자체에 대한 반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외모의 중요성’과 ‘외모지상주의’를 분별하지 못하며, 오히려 외모에 대한 자기 검열과 열등감이 심한 사람들이 피라미 같이 몰려와 물어뜯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스스로가.. 외모가 잘난 사람들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그들을 옹호하고 반기를 드는 세력을 척결한다.


두 번째 이유는, 외모지상주의 비판 시 1도 득이 없으며, 타자의 외모품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 외모가 뛰어나면 =>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하네 기만하지 마라ㅎㅎ

(2) 외모가 안 뛰어나면 => 사회에 불만 있음? 니 와꾸가 문제 있는데 왜 주류 사상에 반기?


세 번째 이유는 내 표현력의 한계로 전달이 어려운데…. 외모의 잘남은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같지만, 막상 다른 기준들보다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기준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를테면,


a. 명품백 구매를 허세라고 비판하려면, 최소한 살 수 있는 돈은 통장에 있어야,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서 자위하는 것인지, 진정으로 낭비라고 생각하는지가 비로소 판단이 선다.

b. 서울대를 가봐야 학벌주의가 잘못됐는지, 마냥 부러워서 까내리는 것인지 스스로도 분별이 된다.

c. 일평생을 한국에서만 살았는데 헬조선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지구본을 꺼내서,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라시아, 인도, 스칸디나비아반도 중에 랜덤으로 1년 살라고 하면 차마 조선에 ‘헬’은 못 붙일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살아봐야 분별이 된다.


다시 외모로 돌아오면, 예쁘고 잘생기다고 하는 것이, 위의 기준들처럼 상대적으로 명확히 나누기는 어려워서, 스스로 포지셔닝이 정확하지 않다. 심지어, 다수결로 못생겨도.. 스스로를 예쁘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다수결로 예뻐도.. 스스로를 못생겼다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할 때 분별력을 갖기 힘들다.


어찌 됐든 상기 세 가지 이유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언급이나 적절한 비판마저도 자취를 감췄고, 외모지상주의는 견제를 안 받으니 더욱 활개를 치고 다닌다. 그리고 나는 이런 외모 자체에 대한 추종과 맹신은 과격하다고 여긴다.


4. 적당히 하자고..


이제는 외모지상주의가 카밀레온처럼 보호색을 띠며 우리 주변에서 공생하고 있으니 존재를 인지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어쩌면 저출산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출산으로 오는 폐해는 적어도 몇 년 뒤 혹은 후대에 오는 문제이나,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폐해는 전방위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고 있으며, 현존하기 때문이다.


외모로 먹고사는 연예인들도 콤플렉스가 있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외모를 검열하고 철저히 관리하는 것마저도 정도가 지나칠 때도 있으나, 최소한 그들은 외모를 가꾸는 것이 경제활동으로 직결되기에 납득은 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는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연반인의 등장). 너도 나도 팔로워를 몇백, 몇천 , 몇만을 두고 있으니 태생적으로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을 좇으려 하니 불행을 자처하는 거 같기도 하다.



외모의 어느 부분이 콤플렉스라면 미의 기준을 바꾸거나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것보다, 가끔은 시술을 받고 필러를 맞으며 코를 세우는 게 편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근데 외모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머지않아 동력을 잃을 것 같다.


왜?


(1) 우리는 동양인인데 정작 서구화된 미의 기준을 좇음.

(2) 인간은 모두 늙는데 동안에 집착함.


나중에 나이 들면, 이런 강박들이 탈부착하듯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를 더 옥죌 것이다.


사실, 여우를 호랑이, 호랑이, 호랑이라 말해도 여우는 여전히 여우다. 모두가 외모를 중요하다. 중요하다 중요하다. 말해도 외모는 중요한 것이지,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 주말을 잘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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