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모르겠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사고가 먼저냐, 언어가 먼저냐?’
이건 조금 알겠다. 언어학자들이 갑론을박하는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로, 경우에 따라, 언어가 사고를 촉발시키기도 하고, 사고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니, 양자택일 하기는 어렵다.(양시론 시전)
아래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언어와 사고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1. 이지메와 왕따 : 오래전 어느 종이 신문의 사설 면에서, 1990년 경 일본의 이지메라는 단어가 한국에 왕따로 번역되어 유입된 후, 학교에서 왕따 문화가 확산되었다는 일화를 봤다. 전에도 따돌림은 있었겠지만은, 특정 언어가 생김으로써, 사고를 형성시켰고, 실체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2. 가스라이팅(Gaslighting) : 한국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통용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무언가 기분은 나쁜데, 콕 찝어 표현할 단어가 없었기에 어렴풋이 감지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사고를 표상하는 단어가 생기니, 인지하게 된다.
3. 저장 : 몇 년 전, 친한 친구 2명의 이름 앞에 ‘좋은 친구’를 붙여 저장해 봤다. 확실히 학번과 전공을 붙였을 때는 애착이 덜 갔었고, 수식어를 붙이니, ‘좋은 친구’라는 사고도 어느 정도 수반됐다. 누군가의 이름에 특별한 수식어(이모티콘)를 붙여주면, 잠깐 틀어져도, 수식어와 이모티콘이, 그 사람을 향한 미움이 넘치지 않게 방파제 역할을 해준다.
4. 알렝드보통 -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 "....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남용되고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한다고 말하자, ….….. 그때부터 사랑은, 적어도 클로이와 나에게는, 이제 단순히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 지름 몇 밀리미터의 달콤하고 말캉말캉한 물체였다."
문득, 마시멜로처럼 사랑이라는 단어의 유의어들이 몇 개 더 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 사랑의 형태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연인 사이에서도)
5. 자투리 시간 : 주요 일정 사이에 끼어있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자투리라고 굳이 명하지 않는 것도 좋다. ‘자투리’라는 언어를 부여하면 아끼고 활용하고, 때로는 허비해도 되는 것 같은 사고가 수반된다. 근데 이동 시간도, 대기 시간도, 중요한 일정 사이의 모든 ‘틈’ 도, 실상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동일하게 흐른다. 나에게 이동하면서 흐르는 시간은, 하루 중 메모를 하기 최적화된 시간이다. 자투리 시간이 아니다.(걸을 때 뇌 회전이 더 잘됨)
6. 언어의 세분화 -> 사고의 세분화
2B, HB,4B, B, F, H... 연필심 종류다. 미대생들은 보면 차이를 분간할 것이다. 단어도 마찬가지다. 붉다. 붉그스름하다. 빨갛다. 시뻘겋다. 선홍빛….. 조금씩 다 다르다.(유의어라는 말도 결국 같지 않음을 전제한다.) 개인적으로,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참 좋아한다. 어휘력이 풍부하면(외국어 포함) 사고력도 풍부해진다.
언어와 사고, 양자(兩者)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굳이 선후관계를 따지자면, 대체로 언어가 선행하고 사고가 후행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언어, 특히 입버릇에 유의하는 편이다.
피곤할 때, ‘피곤하다’를 입 밖으로 꺼내면 더 피곤해진다. 누군가를 싫다고 입 밖으로 말하는 순간 미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외면이 아니라, 굳이 증폭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부정적인 언어는 부정적인 사고로 직결된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귀찮아’ ‘싫어’ ‘피곤해’ ‘짜증 나’라고 말하는 사람의 반경으로부터는 재빠르게 벗어나는 게 현명하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언어는 긍정적인 사고로 직결된다.
이를테면, 행복해서 웃는 것도 있지만, 웃어서(언어) -> 행복(사고) 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그냥 웃어보자. 그리고 긍정적인 말도 뱉어보자. 뇌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심지어, 사고가 부정적이더라도 의도적으로 그것을 긍정적 언어로 맞받아치면, 부정적 사고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