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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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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Nov 26. 2023

글쓰기와 백신


1.

자유로워지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이다. 단, 두 가지 원칙이 있다.

a. 제3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린다. 

b.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단 한 발자국 전까지 솔직하게 쓴다.


거창한 이야기나, 대단한 주장을 할 필요도 없다. 세세한 일상을 담지 않아도 된다. 써서 올리는 행위에 방점이 있으니, 스치는 생각을 포착해 몇 줄로 나열하면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과 자기 검열이 확연하게 옅어짐을 느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지금 반년째 임상실험 중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단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써서 올리고 있다. 전과 후가 다르다. 물론 임상 1상이라 단정 짓긴 이름ㅋ


2.

우리 몸에 약한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넣어줘 항체를 형성하는 게 백신의 원리다. 이로써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잠입해도 면역반응이 일어나 바이러스를 제압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방법도 비슷하다. 누군가의 평가에 지레 겁을 먹고 있다면, 선제적으로 생채기부터 내라. 글을 써서 올리고, 무관심, 냉소, 비평 등을 받다 보면 정신에도 항체가 형성된다. 결국 백신을 맞는 원리와 같다. 


우리는 객관식 세상 속에 찍어서라도 정답을 맞히는 게 중요한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오지선다에 없는 답을 상상 못 한다. 서술하는 형태로 무언가에 대한 답안을 제시해 본 적이 거의 없기에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주저한다. 


근데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소신 있게 드러내지 못하는 다 큰 성인이,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좇는다는 게, 내게는 요원하고 아득해 보인다. 선후관계가 안 맞다. 사소한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글로 써서, 타인이 나를 판단하고, 특정 잣대로 재단하게 만들자. 그럼 홀연히 떠나고 싶다는 계획도,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는 결심도,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결정할 때도, 더 이상 타인의 평가나 시선이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된다.


3.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이 자신을 괴롭히는 자기 검열은 또 다른 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사람들이 자기 검열이 심한 측면이 있다. 주관을 바탕으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정도 조절을 정확히 할  수 없기 때문에 겪는 부작용 중 하나이다. 


한편, 우리 몸의 면역은 늘 내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가? 때에 따라, 내 몸을 공격하기도 하는데, 그게 자가면역질환이라더라. 자가면역질환은 세균, 바이러스 등 외부 침입자로부터 내 몸을 지켜주어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병이며, 인체의 모든 장기와 조직에 나타날 수 있다. 섬찟하지 않은가?


그런데 자기 객관화도 마찬가지다. 자기 객관화는 사회적 동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 검열로 그 모습을 둔갑하여 내 정신을 공격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아무도 관심도 없는데, 내가 나 자신을 괴롭힌다. 타인의 시선에 이어, 자신의 시선까지 정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같은 원리로 글을 써서 극복할 수 있다.


4.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부끄러울 수 있다. 글에서 드러날 생각이 비루해 보여서 주저할 수 있다.

근데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 그냥 쓰고 올리자. 쓰다 보니 나도 분류가 되더라. 이건 덤이고, 정말 전보다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워는 지고 싶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한테 조금이라도 책잡힐 여지를 주고 싶지 않다는 거, 그건 욕심이다. 개인적으로 글 쓰는 사람들을 편애하는 편인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적어도 이런 모순적인 욕심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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