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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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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 일기 Mar 12. 2024

남의 일기 3

새벽 닭발에서 인생을 배우다

”소화시킬 겸, 일기나 쓸까? “


지금은 화요일 새벽 2시다.


12시 30분,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국물닭발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갑자기 닭발이 너무 먹고 싶어서 예의상 3분 정도 고민한 뒤 주문했다.


지금은 이미 맛있게 잘 먹고 소화를 좀 시키기 위해 글을 쓰는 중이다. 헤헤


사실 밤늦게 먹는다는 것, 백수인 상황에서 닭발을 시켜 먹는다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그래! 백수지만 난 아직 돈이 있고, 백수니까 화요일 새벽에 야식도 시켜 먹지! 누릴 수 있을 때 즐기자! “


처음 시켜본 집인데 너무 맛있었고 먹는 내내, 그리고 먹은 뒤에도 후회는 없다.

다만 먹으면서 영상을 찍을까 말까 했는데 거의 다 먹어갈 쯔음,

“찍을걸”이라고 후회를 남긴 것이 조금 아쉽지만


다음엔 찍어야지!


닭발을 먹으면서 ’eye love you’ 드라마를 봤다.

처음 보는 드라마인데 그런 장면이 나왔다.


슬픔에 잠긴 어린 여자아이에게 나이 지긋한 남성분이 커피와 초콜릿을 내밀었다.

여자아이가 커피는 써서 못 마신다 했더니 남성분이 ‘너의 생각에 따라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오늘 내 상황에도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닭발을 먹으면서 ‘아 백수인데 돈 쓰면서 먹네, 아 살찌겠네.’라는 생각에 매몰됐다면 아마 지금 글을 쓰고 있지도 않을 것 같다.

우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이불속으로 다이빙을 하지 않았을까?

그럼 소화를 덜 시킨 상태로 누워서 속이 더부룩한 다음날을 맞이했겠지.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소화를 시킬 수 있는 건

내가 닭발을 먹을 때 ‘그래! 백수니까 이 시간에 먹을 수 있어! 할 수 있을 때 누리자!’라고 생각하면서 내내 행복하고 맛있게만 먹었기 때문이다.


최근, 아빠가 퇴직하셨다. 아빠가 최근 좀 다치셔서 계획보다 조금 더 일찍 퇴직하셨다.

월요일 낮에 아빠랑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를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아직 다친 부분이 불편한 상황이기도 하고, 좀 더 일찍 퇴직하셔서 그런지 아빠가 좀 위축된 모습이었다.

나는야 ENTP.

“그래도 둘 다 백수니까 큰 딸내미랑 월요일에 낮술도 하고 좋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일요일에 아빠를 위해 구매한 데일카네기 <자기 관리론>을 내밀었다.

“책 앞장 보세요 “ 라면서.


책 앞장에는 짧은 메시지와 아빠의 얼굴을 그렸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그림을 그려왔지만 아빠 얼굴을 그린 것은 한 손에 꼽힌다.

최근에 찍어둔 사진을 보면서 그렸는데 웃었으면 좋겠어서 살짝 미소 짓는 얼굴로 그렸다.


아빠는 눈이 잘 안 보이고 집중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내가 줬으니 최대한 읽어보겠다고 하셨다.

아빠가 다 읽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 책에서 잘 맞는 문장을 발견함으로 인해, 지금 아빠를 괴롭게 하는 생각들에서 조금 벗어나기를 바란다.


역대급으로 일기가 뒤죽박죽 하지만


아빠도 나도 지금 상황을 달게 잘 소화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일기를 봐주시는 모든 분들도

쓰디쓴 상황에서도 달달한 맛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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