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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마음에 응원하기

by 생강

삼촌이 요양원에 들어간 후 삼촌과 영상통화를 했다. 팬데믹 기간, 대면 면회가 어려워지면서 사회복지사 핸드폰으로 연결해서 만나던 삼촌 얼굴. 내가 누군지 물어보면서 삼촌을 시험하기보다 내가 누구라고 먼저 말하고 인사하기를 염두에 두며 대화를 시도했다. 아이들한테 누구 좋아하냐고 묻는 것처럼 삼촌을 매번 시험할 수 없었다. 삼촌은 너는 누구, 너는 누구 숙제하듯이 대답했다. 삼촌이 영상통화에 집중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10분에서 7분, 5분, 3분으로. 마스크 쓰고 대면으로 보는 것보다 마스크 쓰지 않고 영상으로 만나는 게 잘 들리지 않지만 그래도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고, 입술 모양을 보면서 내용을 유추할 수 있어 대화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나은 것 같았다. 뭐 드셨냐 물으면 삼촌은 요양원에서 밥도 주지 않는다고, 그 얼마 전만 해도 소고기, 돼지고기 사 오라 하더니 돼지고기만 얘기했다. 소고기라는 단어를 이제 잊은 듯. 하나하나 단어를 잊어 갔다.


삼촌이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집으로 식사 준비해 드리러 다닌 2년 동안 거의 매일 돼지고기볶음을 만들어드렸다. 돼지고기를 아예 1 – 2킬로그램씩 사서 냉동고에 한 주먹씩 나누어두고 녹여 매 끼니 간장 소스에 볶아드렸다. 거의 매일 아침이던, 저녁이던 1회씩은 질리지도 않게 드셨다. 지난 2년 동안 치아도 2 – 3개나 잃고 잘 씹지도 못해 죽을 주로 드시고, 고기도 잘 못 드신다는데, 삼촌은 그래도 여전히 돼지고기를 사 오라셨다. 더 시간이 지나서는 돼지고기를 갈아 불고기 양념에 졸여 갖다 드렸다. 요양보호사는 그동안 만들어간 돼지고기볶음도 잘 드시지 못해서 버렸다 했다. 요양원 식사에도 고기는 끼니마다 나오니 안 가져와도 되고 간식만 챙겨 오라 한다.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며 사회복지사는 개인적 생각이라며 마음이 편치 않으면 고기 가져다 드리라 한다. 삼촌이 비록 영상통화에서 한 얘기를 잊으시지만, 돼지고기 가져오라고 부탁하셨고, 갈 때 가져가겠다 약속했는데, 삼촌이 잊었으리라 생각해 가져가지 않기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 내 마음 편차고 하는 일이었다.


더 시간이 지나서는 돼지고기볶음도 드시지 못하는 상태라고 요양원에서 연락받았다. 나중에 돼지고기볶음을 다시 만들어드릴 수 있을까? 이 ‘나중이’ 가능할까, 가능할 것이다.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두 마음이 요동쳤다. 삼촌이 드실 수 있는 부드러운 카스텔라 몇 개와 덜 부드러운 식감의 빵을 드실 수 있을까 걱정되어 잘 드시던 단팥빵은 평소 5개에서 2개만, 1회 용 포장이 되어 있는 빵 위주로 골라 요양원에 갔다. 도착해 신속 항원 검사를 하고, 평소와 달리 프로그램 실이 있는 2층으로 안내되었다. 요양원에 들어갈 때 삼촌 방에 들어가 본 이래 요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간 때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삼촌은 그만큼 바깥도 아닌 요양원 1층의 정원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하고 날씨가 덥기 때문이었다. 잠깐이라도 바깥공기를 쐬는 게 좋지 않을까 걱정하며 2층으로 올랐다.


삼촌은 2주 전 볼 때보다 다르게 확연히 말라 보였고 손가락은 더 가늘어 보였다. 고개를 들 힘도 없는지 고개를 떨구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누구누구라고 삼촌을 부르며 인사하니 그래도 눈을 뜨면서 누구누구 왔냐고, 남편을 보고는 누구누구 신랑이라고 숙제하듯이 말씀하시고, 다시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는다. 그래도 손은 2주 전보다 온기가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계속 고개 떨구시니 아예 자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요양보호사에게 연락하니 그래도 고개 들게 하고 대화를 시도해 보라 하신다. 침대에 계속 누워있는 거보다 나을 거라고. 그것도 맞는 말씀인듯해 다시 누구누구이고 빵 좀 드시겠냐고, 빵을 잘라 포크에 찍어 드시게 하니 드시려 한다. 코로나 상황에 면회실에서 음식 드시는 건 안 된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깍둑썰기한 카스텔라 6조각을 드시면서 물 3번 드시게 하고 트림까지 하니 다행이다 싶다. 위가 안 좋으신 듯해 먹어도 잘 넘어가나 걱정이고, 못 먹으니 힘이 없어지는 듯해 걱정이다. 깍두기만큼 자른 노란 카스텔라 6조각을 드시고 나니 20분 면회 시간이 다 되었다.


목을 세워 드리려 해도 자꾸 고개를 떨군다. 고개를 숙여 보면 눈도 감고 있다. 고개 들 힘이 없구나. 몸 세울 근력이 없어 자꾸 누워있는 거구나. 삼촌의 힘든 상황을 연장하는 것 같고 자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해 면회가 끝났음을 알렸다. 필담도 어렵고 삼촌은 이제 우리를 알아보기만 하셨다. 그래도 나와 동생을 알아보고 우리 이름을 말하고 남편이 내 신랑임을 말한다. "삼촌, 조금 더 힘을 내 이 계절을 넘기세요. 그렇게 한 계절씩 차곡차곡 넘기세요", 응원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혼란스럽고 어떻게 결정할지, 판단할지 모르는데 상황이 진전될 때 삼촌에게 하는 응원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응원이었다. 이 날을, 이 달을, 이 계절을 넘겨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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