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두물머리가 아니었다
오후 3시,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기고 대략 1시간 정도를 달려 양평에 있는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당도하니 평일임에도 주차 공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차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니 푸른 강바람이 높은 음자리로 불어온다. 자동차로 가득 찬 통로를 따라 웅숭깊게 더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여유로운 바람에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든다. 카메라 장비를 챙겨 두물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서 두물머리로 가는 길은 3인 가족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오솔길 형태인데, 이 오솔길과 어우러진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왼쪽에는 전통문양이 새겨진 낮은 돌담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강과 하늘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온통 녹색 연잎들이 수를 이룬다.
두물머리는 사진가들 사이에 보통 두 가지 소재로 유명하다. 하나는 강을 배경으로 한 아스라한 일출의 모습이오, 또 하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흐드러진 연밭이 그것이다. 대략 7월 즈음이 되면 이 푸른 연밭은 일순간 연분홍 꽃밭으로 수놓아지는데, 이때의 연꽃은 마치 신년 덕담과 함께 주고받는 탐스러운 복주머니를 연상케 한다. 이 유명한 연꽃의 향연은 꼭 사진가가 아니더라도 초대받을 수 있다. 연꽃의 수려함을 좋아하는 이라면 약속한 계절이 찾아올 때 이곳을 거닐며 여유로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했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그리 명명되었다. 이 아름다운 강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이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이고 이 세상 모든 만남과 이별의 근원지이다. 그리움을 간직한 이 강을 따라 커피 한잔 마실 시간 정도를 걸어가면 둥근 반원 모양의 메인 장소에 당도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나룻배 한 척이 정박해 있다. 물길이 만나는 곳은 으레 그러하듯 과거 두물머리는 나루터의 역할을 했다. 서울의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로서의 역할을 했지만 팔당댐이 완공되고 육로가 발달하면서 서서히 그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포구가 가지고 있는 만남과 이별의 향기는 반백년 동안 쌓이고 쌓여 분진이 되었다. 영화 ‘귀향’의 촬영지로 두물머리가 더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쓸쓸함의 응어리가 영화 제작진에게 전달되어서가 아닐까.
하지만 해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자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생기 가득한 제2의 두물머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나들이 가족, 유모차를 끌고 저녁 바람이나 쐴까 하고 나온 워킹맘, 근사한 식당에서 멋들어지게 식사하고 나온 연인, 모처럼만의 산책에 신이 난 강아지들, 한자리에서 돌아가며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대는 단체 여행객들까지 오후의 두물머리는 평소 우리가 알던 그 적막함과 고요함과는 대비를 이룬다. 특히 4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는 오고 가는 이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두물머리에는 이 느티나무 외에도 특히나 하늘로 높게 뻗은 나무들이 많은데, 이러한 나무들 은 두물머리를 이색적인 곳으로 만든다. 아마 이러한 풍경 때문에 오래도록 촬영지로서 사랑받았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가로수처럼 강과 땅이 이어지는 라인에 맞춰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걸으니 강바람이 한 움큼 밀려온다. 강바람에 붉게 물든 노을빛 스카프가 하늘에 나부낀다. 하늘이 오묘한 빛깔로 물들었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황금빛으로 빛이 났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그림자가 두 배 이상 늘어지기 시작했다. 저너머 나무 사이로 빛나는 그것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눈부시게 빛 나면서도 따사로운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 일몰의 아름다움은 강의 수면까지 전염되었다. 이 무지막지한 불가항력의 아름다움은 푸른 잿빛의 강을 금세 황금빛으로 만들었다.
황금빛 수면 위에 정박해 있는 낡은 나룻배 한 척, 해 그림자로 인해 점점 어둠의 장막으로 덮여가는 나무들과 건물들, 같이 온 이들과 담소를 나누며 웃는 붉은 사람들. 이것이 바로 두물머리의 저녁 풍경이다.
마침 저 멀리서 하얀색 옷을 쌍으로 입은 커플들이 보였다. 여자는 화관을 쓰고 있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옷차림이라 유심히 보니 커플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요즘에는 커플들이 기념일 날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스냅사진을 촬영하는 트렌드가 있다. 두물머리도 배경이 튀지 않고 부드러워 커플사진에 애용되는 장소 중 한 곳이다. 왼손에 노란 꽃다발을 든 남자가 약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여자를 내려다본다. 여자는 화관을 쓰고 더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남자를 쳐다본다. 그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앞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포토그래퍼는 그들에게 조금씩 자세를 잡아주며 손짓을 보낸다. 프레임에 담길 두물머리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또 어떤 추억으로 기억될까.
저녁노을로 길어지는 그림자를 밟으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언젠가 일상에 지쳐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곳이었다. 일상의 탈피가 아닌 잠깐의 휴식을 위해 두물머리는 더 없이 좋은 장소이다. 두물머리 맞은편에는 자연정화 공원으로 유명한 <세미원>이 위치하고 있어 같이 방문한다면 하루 코스로 더없이 좋은 여행지가 될듯하다. 특히 세미원은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야간개장을 준비하고 있다니, 빛과 연꽃의 조화를 즐기는 이라면 이 또한 좋은 볼거리가 될듯하다.
점점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한적한 곳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면 두물머리를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PS. 위 글은 모잡지사 오프라인 잡지에 동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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