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 봐도 힐링이 되는 곳 세미원
날이 좋았다. 오랜만에 세미원이나 가볼까 하고 채비를 서둘렀다. 양평까지는 차로 1시간 남짓. 물과 꽃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6월의 세미원은 어떤 모습일까 싶었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좋은 장면을 담기 위해선 해가 비스듬히 들어올 때 즈음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했다. 하지만 일몰의 아름다움을 찍기에 세미원은 적당치 않았다. 세미원의 영업 마감시간은 오후 여섯 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여름 부근의 여섯 시는 밝아도 너무 밝다. 그 덕에 세미원의 일몰을 담기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볕이 강한 낮 시간은 피하고자 대략 오후 다섯 시 즈음 도착할 요량으로 출발을 했다.
달리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는 녹음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아직까지 꺾이지 않은 햇살이 반긴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입고 온 긴팔 남방을 벗어 차 뒷좌석에 던졌다. 아직 여름이라고 부르기엔 햇살에 비해 바람이 기분 좋게 선선했다. 주차장에서 정면을 바라보니 고풍적인 낮은담 위에 하얀 글씨로 <세미원>이라 적혀있었다. 담 너머엔 삼사층 정도 돼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이곳이 세미원인가 싶어 두리번 거리니, 옆에 매표소가 있었다. 다가가자 일상에 지쳐 퇴근시간을 기다리던 매표소 주인이 반쯤 졸린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긴 관람이 여섯 시까지예요. 여섯 시가 지나면 문이 잠깁니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봤다. 이제 막 5시 10분을 넘기고 있었다. 해 질 녘에 와서 볼까 했던 마음 때문에 생각보다 20분 정도 늦게 도착해 버렸다. 네 괜찮아요 라고 말해버리곤 얼른 지갑에서 천 원짜리 네 장을 내밀고 표를 샀다. 왠지 마음이 급했다. 50여 분 만에 이 넓은 세미원을 돌아야 하는구나라는 마음에 긴박함이 앞섰다.
표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꾸깃꾸깃 접어 넣고 종종걸음으로 입구로 들어섰다. 세미원의 입구는 사극에서 나오는 대감집의 대문처럼 회색 기와와 약간은 낡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입구 위쪽에는 형형색색의 자잘한 무늬로 이루어진 작은 현판이 걸려있었다. 현판에는 불이문(不二門)이라고 적혀있었다. 불이문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본디 사찰에서 본당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을 의미한다고 한다. 진리는 곧 하나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세미원이랑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연관성에 대한 의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뭐랄까 세미원을 모두 돌아보고 느낀 점은 하나의 주제로 만든 테마파크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주제들이 혼재되어 있는 잘 만들어진 정원을 연상케 했다.
실제 세미원의 건립 배경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원래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상류에서 떠내려온 부유물이 가득한 오염지역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환경단체들이 쓰레기를 수거하고 수질 정화능력이 뛰어난 연을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경기도가 추가 지원을 해서 지금은 많은 이 들이 오고 가는 세미원이 되었다.
아마 이곳의 현판도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작은 소재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이문이라고 쓰인 아래에는 커다란 태극기 모형의 대문이 있었다. 태극기 모양의 문은 더욱 기묘했는데 독특하게도 팔괘가 그려진 벽과 태극이 그려진 벽 사이를 통과해서 들어가야 하는 구조였다. 세미원을 만든 디자이너는 아마 일반인들보다 훨씬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이임이 분명했다.
기묘한 문을 통과해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세족대였다. 이곳은 발을 씻는 곳으로 옛 선비들이 산간계곡에서 발을 씻으며 마음을 깨끗이 씻은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온전하게 돌로 만들어진 세족대의 흐르는 물 위로 오후의 햇살이 기분 좋게 지나가고 있었다. 세족대와 햇살 사이로 문득 깊은 수풀림이 보였다. 그 사이에는 앙증맞은 징검다리가 있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징검다리였다. 수십 개의 각양각색의 돌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흐르는 물 위로 놓여있었다. 그 위로 우거진 수풀들이 점묘화처럼 징검다리를 덮어 그늘을 제공하고 있었다. 징검다리는 실제 전경도 그렇지만 단어만으로도 정겨운 느낌을 선사한다.
징검다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이다. 특히나 주인공 소년의 가슴을 애태웠던 서울에서 온 여자 주인공, 그녀를 표현했던 단어 중 ‘잔망스럽다’라는 표현이 가슴을 스친다. 잔망스럽다는 말을 국립 국어원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 의미로 ‘보기에 몹시 약하고 가냘프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 보다는 세 번째 의미인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라는 의미가 더욱 어감과 가깝지 않을까 싶다. 징검다리 위에는 새침데기 소녀와 순박한 시골 소년이 쪼그려 앉아 작은 사랑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드디어 세미원의 메인 풍경이 나온다. 세미원이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연꽃이다. 평야처럼 펼쳐진 연밭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엄지공주가 앉아서 쉬어가도 될 만큼의 커다란 연잎들이 푸르게 안착해있었다. 아직까지 꽃이 필 시기가 되지 않아 연분홍 치마 같은 연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연잎들 사이로 강한 햇살이 내리쬔다. 연잎들의 그림자가 점점 진해진다. 넓은 연잎들 위로 제집 드나들 듯이 잠자리들이 날아다닌다. 집 한 채 없이 떠도는 요즘 사람들에 비하면 잠자리의 팔자는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다.
잠자리들 사이로 참새가 재잘되며 날아간다. 참새들은 무리 지어 인적 없는 곳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참새를 따라 걸으니 어느새 다리 밑 공터에 다다랐다. 다리 밑 공터에는 커다란 배들이 다리를 따라 일렬종대로 서있었다. 세미원은 물과의 연관성 때문인지 공간 내에 배가 많다. 이 배들은 또 다른 문으로 오는 이들을 영접하는데, 그것이 바로 배다리이다.
이 배다리는 세미원의 출구이자 입구이다. 배다리를 통해 세미원을 빠져나가면 바로 두물머리와 연결된다. 물론 바깥쪽에서 세미원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배다리는 과거 교량의 역할을 했었다. 배다리 중 손꼽히는 것은 조선 정조 때 한강에 설치한 배다리로 그 규모나 공법이 매우 우수했다고 한다. 이 정조 때의 배다리를 세미원에서는 재현해 놓았다. 배다리는 배를 가로로 두 척씩 나란히 놓고 그 위에 교량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교량 옆으로 삐져나온 배들이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슬슬 오후 햇살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햇살이 배다리를 더욱 길어지게 했다. 배다리를 중심으로 가슴이 탁 트이는 전경들이 펼쳐졌다. 강들이 짙은 녹색을 뗬다. 강의 표면에는 산이 있었고 나무가 있었고 수풀이 있었다. 그 너머 하늘이 보였고 하늘을 가리는 연잎 한 무리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 묶여있었고 서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천상의 목소리로 한 목소리를 내는 중창단이라도 되는 듯 서로가 어우러져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배다리는 천천히 걸었다. 다른 곳보다 특히 천천히 걸었다. 앞에 바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어서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곳의 풍경을 눈으로 담고 싶었다. 그것은 마치 낡은 동양화의 한 장면처럼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진으로 담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이렇게 탁 트인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려면 파노라마로 사진을 담아야 하는데, 그 마저도 눈으로 보는 것만큼의 감흥을 주기는 부족했다.
그때 저 멀리서 배 한 척이 움직이고 있었다. 짙은 푸른색 페인트로 칠해진 낡은 나무로 만든 배는 기껏해야 2명 정도가 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배에는 어부 한분이 타고 있었는데, 그물로 무언가를 건지고 있는 듯했다. 무엇을 건지고 있는 것일까. 어부는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듯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 몇 번 그물을 건져 내더니,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노를 저어 간다. 그 뒤로 조그만 물그림자가 생긴다. 그렇게 유유히 어부는 노를 저어갔다.
그렇게 세미원의 사진 여행은 끝이 난다. 세미원을 나서자마자 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는 냉정하게도 철컹대며 문을 잠갔다. 시간을 보니 여섯 시 이분이었다.
세미원의 원뜻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의미이다. 세미원을 돌고 나오니 이름대로 마음이 조화로워졌다. 왠지 앞으로 마음이 하답답할제 이곳을 찾겠노라 다짐을 했다. 만약 다시 세미원을 보러 온다면 그것은 7월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미원에는 7월 한 달간 야간개장을 하기 때문이다. 달빛 아래에서 보는 연꽃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다시 찾아올 세미원의 아름다움이 기대가 된다.
PS. 에세이포토 여행사진기는 화요일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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