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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그리고 청춘 <1부>

당신의 남이섬은 어떤 모습인가요? 



 흐린 날. 하늘이 끄물끄물하다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꾸물꾸물 남이섬이 떠올랐다. 남이섬이라. 우리 모두는 남이섬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일 수도, 이별의 아픔일 수도, 생의 마지막일 수도, 삶의 전환점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남이섬은 홀로 혹은 동행으로 몇 번을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롭다.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항상 새로운 감성이 싹튼다. 이는 항상 새로운 콘셉트로 남이섬을 꾸미는 운영 측의 배려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장소가 항상 새로워 보이는 건 끊임없이 변화되는 나 때문일 것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중요한 가치의 기준이 변해간다. 그에 따라 장소는 항상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춘천과 가평, 대학교 MT  추억의 장소


 남이섬은 춘천과 가평 사이에 있다. 강원도라면 꽤나 멀다 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사실은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춘천과 가평은 참 많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요즈음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대학을 다닐 때 MT 단골 장소는 단연코 춘천과 가평 그리고 강촌이었다. 


 너무나 많은 대학생들이 오고 가서 시설들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나름 그렇게 인이 박힌 그곳만의 고유의 느낌이 있었다. 특히나 MT를 가게 되면 항상 밤을 새워서 술을 마시곤 했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셔댔는지는 모르겠지만 밤새 술을 마시며 나눌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는 별 문제 아닌 그 주제들이 그 시절에는 나름 심각한 주제들이었다. 그렇게 밤새 토론 아닌 토론을 하고 비몽사몽 문을 열고 맡는 새벽의 향기는 정말 푸르렀다. 그 신선함은 스무 살에 느낄 수 있는 미래의 청사진 같은 기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몇 번 가지 않았던 가평과 강촌은 그렇게 추억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남이섬은 춘천과 가평 사이에 있다

가는길의 일부에는 비가 꽤나 쏟아졌다


 가는 날의 날씨는 비교적 좋았다. 그러니까 사진 찍기 좋은 날씨라는 말이다. 사실 아침부터 날이 흐리고 빗방울이 살짜기 떴는데 덕분에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그러다 잠시 후 다시 햇빛이 비쳤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도 아닌데 날이 오락가락했다. 절호의 찬스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날 풍경사진 찍기가 참 좋다. 잠시 볕이 드는 맑은 순간에도 하늘은 잔뜩 먹구름이 끼어있어 그 조화가 매우 오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비가 오는 감수성 가득한 사진도 촬영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채비를 서둘렀다. 오늘은 외출 아이템이 하나 더 늘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감색 장우산. 접이식 우산은 가지고 다니기는 편하지만 비가 꽤나 쏟아지는 날엔 거의 무용지물이다. 그 보다는 지팡이로도 쓸 수 있는 장우산을 선호하는 편이다. 카메라 배낭을 단단히 메고 옛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국 신사처럼 장우산을 바닥에 또각또각 짚으며 집을 나섰다.     


 가는 길은 변덕이 심했다. 달리는 고속도로 위는 한바탕 쏟아지는 비와 코발트색 하늘이 번갈아가며 보였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도착한 남이섬은 푸른 가을 하늘 같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흐린 먹구름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우유 같은 하얀 구름이 푸른 하늘을 더욱 푸르게 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남이섬


 남이섬은 말 그대로 섬이다. 섬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왕복하는 배를 타고 5분여 정도를 들어가야 한다. 이 배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남이섬 선착장에서 있는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티켓박스 앞에는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있었다. 외국인들의 얼굴에는 연신 웃음들이 넘쳐났다. 중국인 관광객들인 듯했다.     


남이섬 티켓팅



 남이섬의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편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한류 바람 영향이다. 배용준과 최지우가 거닐었던 그 길을 걸어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남이섬을 방문한다. 두 번째로 남이섬은 <나미나라 공화국>을 선포하고 지구촌 나라들과 직접 수교를 맺었다. 덕분에 남이섬을 방문하면 매달 새로운 국제행사들을 볼 수 있다.        


 이윽고 배가 도착했다. 배는 10분에 한 번씩 왕복한다. 그래서 배편을 놓쳤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배가 당도하자 배에서 썰물 빠지듯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배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인원들을 태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안전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선승했다. 배는 생각보다 넓었다. 짧은 거리를 셔틀버스처럼 왕복하는 것이 주 목적인 배인지라 내부에 별다른 시설은 없었다. 단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의자들이 즐비해 있었다.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배
배의 내부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과 강렬한 햇빛이 적절하게 분배되어 얼굴을 때린다. 그때 옆에 한 무리의 젊은 청춘남녀들이 강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연신 얼굴의 각도를 잡아가며 사진을 찍어댔고, 그 옆에 있던 두 명의 남자는 그 프레임에 들어가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그들은 무슨 관계일까.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같이 여행을 온다면 그중 한 명의 남자 혹은 두 명 모두 이 여자에게 호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 역시도 이 두 명의 남자에게 모두 호감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중 한 명의 남자에게 호감이 있지만, 둘만의 여행은 아직 어색할지도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냥 어장관리의 명목으로 같이 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연이 어찌 되었건 그들은 아름다워 보였다. 푸른 강을 배경으로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푸르렀다.      



 20대. 옆에 탄 20대의 청춘남녀와 비슷한 나이였을 무렵 나는 남이섬을 방문했다. 당시 나는 차도 없었고 변변찮은 카메라 한 대도 없는 빈털터리였지만 지금의 강바람보다 더 달콤한 강바람을 느꼈었고, 지금의 햇살보다 더 아름다운 햇살을 보았었고, 내 옆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들의 젊음들이 같이 했다. 뭐랄까 그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지만,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김영호가 갓 스무 살 때 사랑하는 여자와의 설렘의 순간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 여자가 건네주던 박하사탕 하나에 감동하는 그 순수함을 회상하며 철도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그 쓸쓸함과 막막함. 그것이 30대의 내가 스무 살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했다.     


 그렇게 남이섬은 아련한 추억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시간이 오래 지나 낡은 책의 누렇게 변색된 책장 같은 그래서 이제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텍스트로 자리 잡은 그런 기억들. 하지만 이렇게 같은 장소를 찾아 거닐게 되면 당시의 희미한 기억들이 오감을 자극하며 눈앞에 펼쳐진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두 귀를 막은 이어폰에서 이선희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노래의 초입부에서 조용한 전주와 이선희의 가녀린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고요한 기억 속으로 흘러 흘러간다.     


 ‘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노래의 클라이맥스가 찾아온다. 이선희의 매력 있는 목소리와 함께 고요한 수면 같았던 기억의 파편이 산산조각 난다. 깨진 파편들은 기억 저편으로 침잠한다. 멀어진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진다. 눈을 떠보니 배가 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배는 물 그림자를 그리고 선착장을 떠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남이섬에 당도했다.  <계속>  









<남이섬 그리고 청춘> 편은 분량이 많아 1부와 2부로 나눠서 연재합니다.

PS. 더 많은 사진을 보시려면 이곳으로


https://brunch.co.kr/@brunchqx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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