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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김광석을 추억하며





 20대 때  김광석의 노래에 열광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우리보다 한세대 전의 노래, 그러니까 대략 내가 한창 꼬질꼬질한 교복을 입고 교과서를 파고 있을 때 김광석의 노래는 라디오를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분별력 없이 본능에 따라 움직였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김광석의 노래보다는 귀에 착 감기는 비장한 록 음악에 더 끌렸던 듯하다. 그렇게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묵직한 헤비메탈 음악으로 귀를 가득 채운 생활이 3년. 그리고 대학에 입학을 했다.     


 대학은 새로운 세계였다. 남중 남고를 나온 탓에 정확히 응답하라 1997의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로맨스는 대학에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다. 1999년의 대학은 낭만적이고 자유로웠다. 술로 밤을 지새우는 날들, 과실에서 자고 다음날 다시 술을 마셨다. 매번 먹는 사람은 바뀌었지만 매일 술을 먹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밤새 술을 마시고 하루 종일 박정현의 노래를 듣고 다니는 녀석이 있었는가 하면, 세이클럽에서 채팅을 해서 번개팅을 나가는 친구 녀석도 있었다.     


 과실의 복학생들은 바둑이나 장기를 두곤 했다. 돌이켜 보면 검지와 중지에 돌을 끼운 채 딱딱 거리며 돌을 놓는 모습이 꽤나 어른스레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대략 스물일곱 여덟 밖에 안된 나이였다. 그래도 그때 대학생들은 꽤나 성숙해 보였다. 나는 종종 복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곤 했다.      





 당시 대학 앞에 다락방 같은 술집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들어가야 했다. 꽤나 오래된 건물 같았는데 보수를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듯했다. 들어가면 기름 쩐내가 진동을 했다. 기름 냄새 사이로 학생들은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토론을 끝내지 않으면 이 세상이 망할 것처럼.      


 오른편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작은 나무 계단이 있었다. 대략 사람 하나 올라갈 정도의 폭밖에 안 되는 삐걱대는 계단을 올라가면 우리의 아지트가 있었다. 그곳엔 작은 좌탁이 있었는데 앉으면 지척의 거리에 상대방의 얼굴이 있어 아무리 낯선 이라도 이곳에서 술을 한순배 돌리면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게다가 낡은 갓의 조도 낮은 백열등은 그럭저럭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벽에는 몇 년간 꾸준히 방문한 이들이 그려놓은 그림들과 낙서들이 가득했다.      


 그곳에 앉으면 우리는 항상 제일 저렴하고 큰 파전을 시켰다. 돈 없는 대학생들에게 이보다 좋은 안주는 없었다. 그럼 대략 두께가 1cm 정도 되는 큼지막한 파전이 나왔다. 대체 이 파전을 어떻게 이 가격으로 판매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이다. 여튼 우리는 파전이 나오기 전 나오는 콩나물국과 함께 이미 소주 2병을 비워내곤 했다. 그러다 파전이 나오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프리카과 알래스카를 왔다 갔다 했다. 남한과 북한을 왔다 갔다 했고, 어제 만났다 헤어진 여인들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이야기가 익어가면 분위기가 익어간다. 아마 익어간다는 표현이 꽤나 정확했던 것 같다.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하해와 같이 넓어지곤 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띄워주는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소란한 웅성거림 사이로 낮게 깔리는 음악은 그 주점의 분위기를 대표하고, 추억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곳의 단골 레퍼토리는 김광석이었다.      


 처음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밀려왔다. 수수한 하모니카음 사이로 들려오는 밀도 높은 목소리. 그것은 어머니의 푸근한 가슴 같기도 하고 작은 골방의 고독함 같기도 했다. 주점에서 생애 최초로 들었던 김광석의 노래는 <사랑했지만>이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라고 그의 목소리가 시작되면서 비 오는 그날의 풍경이 생각나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김광석의 공연 실황을 들어보면 본인은 실제 이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에 대한 수동적 태도가 본인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당시 사랑했지만 이라는 노래는 들었을 때 나는 가슴 아픈 사랑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사와 목소리 멜로디 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어떻게 노래가 이럴 수가 있지. 아....     




 그 이후 김광석의 모든 노래를 섭식하기 시작했다. TAPE과 CD를 구매했다. 그리고 김광석의 전곡을 반복해서 듣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슬펐다. 감정의 표현이 아닌 그냥 목소리가 슬펐다. 바다가 푸른 요동을 쳐서가 아니라 그냥 푸른 것처럼 그렇게 김광석의 목소리는 슬펐다. 밝은 노래를 불러도 슬프고, 슬픈 노래를 부르면 더 슬펐다. 목소리에 들어있는 태생적 한이랄까. 그것은 그 어떤 기교로도 앞설 수 없었다.      

 그것은 음악의 힘이기 전에 목소리의 힘이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슬픈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까. 그래서 오래된 공연 실황을 보았다. 꽤 오래돼 보이는 실황을 다운로드 받아서 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는 너무 해맑았다. 환한 웃음에 노래 중간중간에 썰렁한 농담을 던지기까지 했다. 웃을 때 보이지 않는 웃음기 가득한 눈, 기분 좋은 주름이 가득한 그의 웃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참 따뜻한 웃음 그런데 그 웃음이 슬퍼 보였다. 단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웃음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카타르시스를 가지고 있었다. 실황을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음이 참 안타까웠다. 동시대에 살아있지 못한 안타까움.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아니면 그대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아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특히 김광석의 마지막 녹음곡인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곡은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저 세상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곡인데, 마치 본인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멜로디와 가사가 인상 깊었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정호승 시인의 가사에 멜로디를 붙인 이 곡은 장엄하며 비장하다. 거기에 김광석의 목소리가 입혀지니 그 독특한 감성이 배가된다. 이 노래뿐이랴. 그 외 지면이나 말,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명곡들이 가슴에 묻힌다. 그것들은 어떤 수단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오직 노래로만 표현이 가능한 그런 곡들이었다.     





예술은...2016 대학로 photobyhyeruu



 김광석의 노래들은 항상 내 삶과 붙어 있었다. 나를 짝사랑했던 그녀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노래를 100번이나 돌려 듣기를 하고 있었고,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는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술을 마시면 ‘사랑했지만’을 들었고, 홀로 걸으며 ‘거리에서’를 흥얼거렸다. 모두 내 곁을 떠난 어떤 날은 ‘나른한 오후’를 들었다. 그렇게 김광석의 노래는 오롯이 내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살 두 살 먹어 서른 중반이 되었고 이젠 더 이상 김광석 노래를 듣지 않는다. 김광석 노래 전곡을 하도 들어 모든 노래가 머릿속에서 각인될 즈음 나는 더 이상 김광석 노래를 듣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감성으로는 도저히 일상생활이 불가했다. 그것은 너무나 담담한 슬픔이었으며,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의 감수성이었다. 노래를 듣는 날엔 항상 술 생각이 났고 과거의 모든 추억들이 독립영화처럼 떠올랐다.     



 그러다가 문득 김광석 노래를 듣고 싶어 졌다. LP로 듣던 그 김광석은 아니지만 인터넷 상에 존재하던 그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순간 추억의 파도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래 그땐 그랬었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청춘의 추억들이 사실이었는지 만들어낸 환상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바탕 꿈이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읽은 소설의 한토막이 경험으로 치환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나는 지금 이 순간 생각하고 느끼고 추억한다. 그것도 김광석을 통해서.     

 삶은 멈출 수도 없이 질주하지만 추억은 남는다. 하지만 한 번쯤 시간의 속도에서 벗어나 잠깐의 사색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광석의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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