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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당신을 위해

그렇게 친구는 귀촌을 했다







walk on mey way. 홍성 2013 photo by hyeruu




 아마 한 5~6년 즈음됐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녀석이 시골로 간단다. 아니 평생을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이 웬 말이냐 했더니 시골의 한적한 삶이 좋단다. 당시에는 젊은이의 귀촌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을 때였다. 시골 가면 모든 것이 불편할 텐데 괜찮겠어? 응 도시의 삶에 지쳐 버렸어. 너무 경쟁이 과다해. 친구는 그 말을 남기고 시골 갈 준비를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옥을 배운다고 한옥 학교를 들어갔다. 그리곤 한옥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시골 가면 모든 걸 혼자 해야 할 테니 기본적인 생존 방법들을 배워야 될 거야. 그렇게 친구는 한옥 짓는 걸 배우고 시골의 삶에 적응해가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해 나갔다. 나무 깎는 법을 배웠고, 보를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1여 년, 친구는 충남 홍성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뭐 그리 갑작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과연 얼마나 저곳에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적응하지 못해서 올라오지는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삶에 지친 나는 갑작스레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도 가장 시끌벅적한 반포 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셔터를 내리고 시계를 보니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일은 쉬는 날인데 무얼 해야 할까 잠시 생각했다. 그때는 다니던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도 올바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다. 좋아하는 걸 하자니 먹고 살 걱정이 앞섰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일을 하자니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혼란함은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건 흡사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에 나오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정비공과 비슷했다. 개인적으로 직장생활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점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10시. 도착하면 대략 새벽 한 시가 넘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그곳을 가야만 하는 이유가 머릿속에 수십 가지나 돌고 있었으니까. 창문을 열고 서행을 하자 도시의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왔다. 그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영화 <향수>에서나 나올법한 유럽의 악취 가득한 골목의 향기가 났다. 그렇게 악취로 찌든 도시를 뒤로하고 나는 홍성으로 달렸다.     


 새벽의 홍성은 시리도록 캄캄했다. 그곳은 이미 고요한 어둠의 장막이 덮여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선명하게 떠있었다. 안쪽에 살고 있는 토끼들이 다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바람에 별빛들이 숲을 이뤄 밀려온다. 별자리를 모르는 이라도 이곳에서 잠시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은 밤하늘이었다. 풀내음이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 시골의 가을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 이 맛에 시골에 사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골은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다.      



 이윽고 친구를 만났다. 어째 도시에 있을 때 보다 살이 조금 오른 듯했다. 친구는 작은 소반에 조촐한 술상을 내어왔다. 민자 무늬의 작은 도자기 술잔에 술을 쪼르륵 따랐다. 술 따르는 소리에 맞춰 귀뚜라미들이 울어재낀다.     


 “잘 사냐?”      


 “그럼 좋지.”     


 “시골은 어때? 도시랑 비슷해?”     


 “말도 마. 여기선 검은 봉지 하나 못 들고 다닌다. 들고 다니면 그게 뭐냐고 동네 사람 모두가 다 물어보거든.”     


 “하하 사람들이 서로들한테 관심이 많은가 보네.”     


 “관심이 많고 말도 많고 그래.”     


 “그래 시골의 정서가 그러하지...”     


 우리의 밤은 깊어갔고 이야기는 술과 함께 익어갔다. 우리는 그간의 이야기에 밤이 깊어지는지도 몰랐다.      


 “그래 시골에서 벌이는 괜찮아?”     


 “그냥 그렇지 뭐. 대신 시골에는 쓰는 게 별로 없어서 살만해.”     


 친구는 그곳의 한 마을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최저임금의 금액이었지만 시골에서 사는지라 크게 문제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뭐랄까 아직도 시골에 가면 힘들다 라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먹고 살걸 찾는 게 참 쉽지 않아 그치? 맞아 그건 그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20대 때부터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술을 먹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보통의 스무 살 즈음 관심 있는 주제들에 대해선 오히려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십 대 초반 크리슈나무르티의 책들을 돌려 읽었고, 노자와 장자를 읽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시골의 삶은 행복해?”     


“응 행복하지.”     


“그런데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 같은데?”     


“난 사람들에게 시골에서의 삶을 추천해 줄 거야.”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래?”     


“음 그건 말이지. 말로 해선 안돼.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도 깨달을 거야.”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할 때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장기적이지도 설득 확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삶의 가치에 대해서 인정하게 된다. 굉장히 단순한 진리임에도 사람들은 이를 간과한다. 특히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이들에게 이러한 방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보통의 주변인들은 대부분 새로운 길을 말리는 경향이 있다. 그 첫 번째 공신은 부모님이고 두 번째 공신은 친구들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 왔듯이 모든 삶의 책임은 내게 있어왔고, 앞으로도 내게 있다. 책임지지 않는 이의 선택은 절실함이 없다. 그 절실함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절실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지금은 좀 덜할지 모르지만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많은 관여가 있어왔다. 그에 따르는 것이 여러 경험치를 통한 효율적 판단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러하지 않다. 각자의 성향이 모두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겠는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말을 따를 것인지, 온전히 나만의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도 본인의 몫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했다면 주변의 시선. 그것들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단지 약간의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행복한 모습을 주변에 보여주면 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의 답이고 결과이다.      





 결국 그 친구는 시골에 정착을 했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지금은 건강한 사내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다. 그들의 삶은 세상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기준 그러니까 돈이라던지 명예라던지 지위라던지 그러한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단지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었고 그 안에서 삶의 위로를 만들어내고 사랑을 만들어내고 행복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래 영상은 위의 내용에 대한 개인 방송 내용입니다.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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