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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수필] 깍두기 문화

깍두기는 인간존중의 표본적 시스템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hongseong. chungnam. Fuji x100s f4. 2016>




“뒤집어라 어퍼라”     

 

편 가르기가 한창이다. 게임을 가장 잘하는 동네 선임 두 명이 회심의 미소로 편 가르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번엔 영철이 저놈이 우리 편으로 와야 이길 것 같은데 말이지.      


“와!!! 영철이 우리 편이다.”     


“자 그리고 우리 막내는 깍두기 해. 막내야 일로와. 자 그럼 이제 시작하는 거다. 반칙하기 없기야.”     


순식간에 편이 갈라졌다. 아이들은 모두 결의에 찬 눈으로 바닥에 돌로 그린 하얀 선을 따라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다. 한 명 두 명 오호라 다들 잘하는데.... 야야 막내 금 밟았어.      


“야 막내 괜찮아. 일로와.”     


 막내는 슬그머니 미안한 얼굴로 형들 뒤로 몸을 숨긴다. 동네 대장 제일 맏형이 머리를 쓰윽 쓰다듬는다. 귀여운 자식... 그래 봤자 나이 차이 5년밖에 안 나는데 말이지. 그때였다. 멀리서 엄마의 부름이 들린다. 이것들아 저녁 먹으러 와.      



 이것이 우리 90년대 동네 풍경이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도 이런 추억들이 있을까? 뭐 요즘에도 놀이터 보면 친구들끼리 옹기종기 놀긴 하더라. 유튜브로 영상 보고, 유희왕 카드 가지고 놀고, 돈 따먹기 하고 등등등. 놀이문화야 사회의 흐름에 맞춰간다지만 여기에 없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깍두기’이다.     




‘깍두기’


 김치 이름이냐고?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의미가 하나 있다. 깍두기에 대해 잠깐 설명해볼까. 게임을 하기 위해 편을 나누다 보면 홀수여서 편이 안 맞을 때가 있다. 그때 나이가 가장 어린 친구나 게임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들을 깍두기로 지정해 자기가 가고 싶은 편으로 가던지 열세인 편으로 가는 문화이다. 그런데 이 깍두기의 의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로 깍두기로 지정된 아이들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아이들 사이에서 비난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고? 깍두기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깍두기가 사라졌다. 못하면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그러더니 왕따란 신조어가 생겼다. 끼리끼리 문화가 점점 가열되더니 우리 쪽이 아니면 배척해버린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성은 누가 만들었을까.     


깍두기는 인간존중의 표본적 시스템이다


 깍두기는 인간존중의 표본적 시스템이다. 이런 문화가 당시엔 매우 당연했다. 

 깍두기는 못해도 되었다. 실수해도 되었다. 뭐 약간의 자존심은 상할 수 있겠지만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 아이의 실력보다는 동네 구성원으로서 그 아이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 승부의 문제보다는 같이 모여 재미있게 놀아보자의 관념이 더욱 강했다. 구성원으로서 그 아이는 실력에 상관없이 누군가의 동생이었고 누군가의 형이었다. 이러한 구성원 문화가 끼리끼리 문화는 아니었냐고? 필자가 생각할 때 아마 그때가 지금보다 이사 온 아이들이 더욱 잘 어울려 놀 수 있는 환경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아이들은 왕따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있다. 같이 놀 자의 개념은 사라지고, 내 이마를 보전하느라 전전긍긍한다. 몇몇 아이들은 가해자로서 낙인을 지니고, 어떤 아이들은 피해자로서 낙인을 지니고 서로를 괴롭히고 울고불고 자살한다. 인간존중은 이미 개나 줘버린 상황이다.      


어른들은 깍두기 문화를 아이들에게 전달해줘야 한다


 이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이다. 아이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 능력위주의 가치를 심어주는 부모들의 문제이며, 물질만능주의를 장려하는 사회의 문제이다. 아이들은 다시 순화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순화되기 위해서 어른들은 <깍두기 문화>를 회상해야 한다. 기억해야 하고 이를 아이들에게 전달해줘야 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에서 다시 깍두기란 소리가 들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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