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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수필] 콤플렉스는 글의 가장 좋은 소재이다

로맨스 소설의 작가들은 실제 사랑에 대한 콤플렉스 덩어리이다






강릉.2016 photobyhyeruu



 가슴을 뛰게 하는 로맨스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아름다운 스토리와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주변인들과의 갈등,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이불속에서 고개만 내밀고 읽으며 울고 웃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이런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많은 연예를 해봤을까. 온전한 사랑은 해봤을까. 아니면 시쳇말로 사랑을 글로 배운 것이기에 이렇게 잘 쓸 수 있는 것일까?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들 중 대부분이 사랑에 대한 콤플렉스나 심적 결핍이 많다 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예술 활동을 한다. 이렇게 누군가는 글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그림을 그린다. 사실 생활의 모든 부분들에는 예술적 활동들이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예술 활동들 특히나 스토리가 있는 예술 활동들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작가의 콤플렉스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많다.      


콤플렉스는 글의 꽤나 좋은 소재이다


 이러한 콤플렉스를 통한 소재 선택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콤플렉스는 세상을 살면서 관련된 일을 경험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꽤나 기억에 남는 일이라 함은 기분 좋은 일보다는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처를 입게 된 경위에 대해서 경험자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부분을 자세히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한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본인에게 그 왕따라는 부분이 인생에 있어서 크나 큰 트라우마이며 마음의 상처일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 말투와 행동들, 아무도 본인을 봐주지 않는 외로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모님과 선생님 등. 여러 요소에서 그는 왕따라는 문제를 직접 당했을 때의 팩트와 감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많은 경험과 앎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그가 글을 쓴다면 ‘왕따’라는 소재는 그에게 매우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 대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일은 글을 씀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작가는 본인이 잡은 주제에 대해서 전문가 정도의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 그래서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완성하면 작가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이런 전문 지식들이 가미되지 않게 되면 작품은 그저 그런 작품이 되어 버린다. 남들도 다 아는 사실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고 해봤자 그 누가 그 작품을 볼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각자가 가장 잘하는 주력을 찾아야 한다. 내가 이 부분만큼은 남들보다 더 잘 알고 있어, 이 부분만큼은 남들보다 더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어 하는 소재가 누구나 분명히 있다. 나는 그런 게 없어. 난 평범하니까 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그들만의 강력한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하물며 빈둥대는 백수 조차도 그런 이야기는 넘쳐나고 있었다. 백수에게 가장 좋은 소재는 백수였을 때 느끼는 감정과 사실들이다. 이렇게 우리 삶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평범한 삶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끌어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필자의 글도 모두 경험에서 비롯된다. 살면서 경험했던 많은 소재들. 그와 함께 들었던 생각들. 다만 정리되지 않고 시간의 강을 건너온 이야기가 많을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한 소재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정리하고 글을 쓴다. 경험에서 비롯되는 글들은 디테일한 팩트와 감정들이 묻어난다. 이러한 부분들은 다른 누군가의 공감을 자아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야기가 전제되지 않는 진리는 피곤하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도피처를 만든다


 두 번째로 콤플렉스는 작품을 통해 작가 스스로의 도피처를 강력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도피처, 도망하여 몸을 피하는 곳.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상처를 받고 산다. 이러한 것들이 트라우마가 되면 콤플렉스로 발전한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이러한 상처를 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예술 활동이다. 우리는 글을 통해 일어났던 일들을 치유한다. 수필 형태의 글을 쓰면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복기할 수 있다. 다시 되새김하며 그때의 마음을 떠올려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서 생각을 하게 되면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데, 글은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돌파구이다. 실제로도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면 치유 효과가 발생한다. 글을 쓰려면 당시 상황을 복기하며 그에 대한 논리적인 사유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당시 행동들이나 사실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던 사건은 서서히 이해와 관용을 거쳐 그땐 그랬지 형태의 편안한 일상으로 자리 잡곤 한다.     


 만약 우리가 수필이 아닌 소설을 쓴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소설은 그 안에서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 이 캐릭터는 현실의 내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왕따를 당한 학생이 소설을 쓴다 라면 학급의 불량 학생들을 혼내주는 영웅 주인공이 있는 학원물을 창조해 낼 수 있다. 주인공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불량학생들을 처단한다. 이러한 처단을 통해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을 구제해주고, 학교에 평화를 가져오게 한다. 다른 학교 불량서클들과 싸워 그 일대 학교를 평졍한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주인공에 본인의 삶을 투영시킨다. 이로써 당시 그가 겪었던 고통을 중화하려 노력할 것이고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엄마가 자식들에게 ‘넌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을 꼭 이뤄야 한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 아 그런데 말이야 공부만 해서는 안돼. 우리 바이올린도 좀 배워볼까? 바이올린을 배우려면 감성이 풍부해야 할 거야. 우리 글쓰기도 좀 배워보자. 어디 한번 니 인생 꽉꽉 한 번 채워볼까?’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뭐 핵심은 같지만 방법과 대상이 다르다. 부모가 자식을 통해 이루려 하는 대리만족은 그로 인해 아이들의 감성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방법은 최근 김미경 강사가 어딘가에서 했던 말을 빌리면 답이 된다. 


 엄마들의 꿈이 뭐예요? 저는 됐고요 우리 아들 한의대 가는 거요. 어머님 어머님이 한의대 직접 가세요. 10살짜리 아들 10년 걸려서 한의대 보내는 것보다 38짜리 엄마가 수능 보는 게 더 빨라요. 그래 이게 정답이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 애꿎은 아이들 잡지 말고.     


 하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글쓰기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사실 얼마나 좋은 도구이고 매체인가. 이 소설 안에서는 누구를 죽이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이 가 없다.  소설은 허구라는 거대한 방어막을 덮어쓰고 있는 마징가제트와 같다. 이러한 방어막은 그들이 끊임없는 대리만족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렇게 글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 치유를 해주고 보듬어 준다. 그것이 글의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글을 써야 한다. 누군가에게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작업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자가 치유의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글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내 안의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 소설가들의 글만 글이 아니다. 유명한 작가들의 글만 글이 아니다. 글은 우리의 삶이고 생활이다.      




오늘 당신의 글을 위해 키보드를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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