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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좋아요'와 '나쁘지 않아요'

말은 행동을 바꿔 놓는다



 과거 장사를 배울 때였다.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지적받았던 것은 내 말투였다. 당시 고객들과 이야기할 때 많이 썼던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은 바로 ‘나쁘지 않아요’였다. 점장은 내게 이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아요’라고 말을 하는 것보단 ‘좋아요’라고 하는 것이 같은 물건이라도 더 판매량이 올라갔다. 게다가 좋아요, 나빠요 등의 단정적 어조를 많이 쓰게 되면 이상하게도 내 말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갔다.      





 처음 내 말투가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밥상머리에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말이 틀릴 수도 있고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수준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면 그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단다. 항상 여지를 남겨놓아야 돼. 그래서 어릴 때 내 말투들은 항상 좋은 것 같아요, 나쁘지 않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등등이었다.      


 아버지는 그 연배에서 꽤나 지식인이셨다. 지금이야 칠순이 훌쩍 넘으셨지만, 60년대 당시 법대를 다니셨으니 꽤나 엘리트 축에 속했다. 그런데 법조문의 경우 일본에서 넘어와 번역되다 보니, 부정의 부정 문장들이 꽤나 많았다. ~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같은. 이 말은 결국 맞다는 말이지만 부정의 부정으로 말을 하게 되니, 그 뜻이 모호해진다. 사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들 말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어찌 보면 여지를 만드는 말이다. 아마 법조문은 매우 명확한 것 같지만 사실 삶을 모두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법 공부를 하셨던 아버지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젊은 시절부터 뼛속까지 심어져 있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60~70년 격동의 시절, 명확히 내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자칫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였다. 그래서 은연중에 명확한 의견 표출이 금기시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당신은 그런 말투를 가지게 되셨고, 그것이 지식인으로서의 세련된 말투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살다 보니 어느 정도는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더 좋은 경우가 많았다. 나쁘지 않아요 라고 대답하기보다는 좋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훨씬 신뢰도 있어 보였고, 명확한 사람처럼 보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다는 할 수 있어요가 훨씬 좋았고,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보다는 못해요가 훨씬 좋았다.      





말이 명확해지면 생각에 확신이 생기고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다


 이러한 말투의 변화는 생각이나 성격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말이 명확해지자 생각에 확신이 생기고, 해야 할 일들이 정확해졌다. 이러한 성향의 변화는 그 이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요즘도 주변에서 직설적이다 라는 말은 종종 듣긴 한다. 그래도 말을 돌려서 하거나 은근히 사람을 떠보는 응큼한 사람은 아니라는 인식은 확실히 주고 있다. 그리고 말투에 따라 성격도 바뀌기 시작했다. 모든 일에 명확히 행동하고 대처한다. 그렇게 말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인생을 바꾸고 있었다.     


 게다가 확정적 말투에 책임을 지기 위해 더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확정적 말투는 자칫 잘못하면 말만 앞서는 사람으로 보이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철저하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일을 잘한다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그만큼 나를 지켜내기 위한 책임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야기.photobyhyeruu



명확하지 못한 표현은 자기 방어적 표현 중 하나이다


 사실 명확하지 못한 표현은 굉장히 방어적인 표현 방법 중 하나이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언어적 습관 중 하나인데, 이러한 언어습관은 사람을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만들고, 일을 함에 있어서도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하는 나쁜 습관을 만든다. 이것은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비난받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살다가 어찌 한 번도 비난받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인간관계를 하면서 비난받는 것은 각자의 생각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을 회피하게 되면 우리는 발전할 수 없다.      


문제는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가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자기 방어적 습관이 ‘미안합니다’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불명확한 말들은 잘못을 인정하기 전에 변명거리를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변명을 한다고 본인의 잘못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잘못은 상쇄되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본인의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수정을 하는 것이 전체적인 관점에서 훨씬 이익이 된다.      


 이렇게 말투 하나에는 꽤나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신경을 써야 하고, 그 사람의 말투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라면 말투를 바꾸어보자. 명확한 말투는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이렇게 말투를 바꾸는 행위는 다른 방법들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데, 그 이유는 매일매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틈에 반복적으로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매일 그렇게 조금씩 말투를 바꿔 나간다면 우리는 그 말투에 따른 성격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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