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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 꽃을 선물 받는다는 것

이제 나는 꽃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꽃? 

그걸 왜 주고받는 거야. 먹을 수도 없고 쓸 곳도 없잖아. 

그렇다고 집에다 가져다 놓으면 금세 시들어버리고, 

시든 후에는 꽃잎들이 말라서 흩날리는 통에 청소하기만 귀찮고 말이지.       




 지금까지 연애를 하면서도 꽃을 선물했던 적은 없었다. 그 일회성의 선물을 나는 어떻게 주어야 할지도 몰랐고, 왜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물은 당신이 필요한 것들을 물어보고 구매해주는 식이었다. 이거 참 낭만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구먼 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나름 상대방을 배려한 행동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꽃보다는 필요한 물건이 더 좋을 거라 생각했고, 맘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은 이가 굳이 그것을 다시 교환하러 구입처로 가는 것이야 말로 선물의 낭만을 깨버리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과거 내가 선물한 목도리는 그녀의 장롱 속에 박혀 있다거나 누군가에게 다시 선물로 준다거나,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로 세상을 돌아다녔을 가능성이 높았다. 목도리를 받았을 때의 그녀의 어색한 미소를 보고 앞으로는 꼭 같이 가서 선물을 구매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우연찮게도 오늘 아침 꽃을 선물 받았다. 대학 졸업식 후 처음이니까 아마 한 15년 정도는 되었을까? 게다가 딱히 목적성 있게 꽃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침에 동네를 지나가는데 꽃을 재배하시는 사장님을 만났다. 갑작스레 팔을 이끌더니 줄 게 있단다.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해서 고개만 갸우뚱 거리며 따라갔다. 차 트렁크가 열리니 새빨간 꽃잎이 환하게 빛나는 꽃이 가득했다.     

 

“이것이 포인세티아예요.”


 “아 처음 보는 꽃인데 너무 예쁘네요.”


 “일명 크리스마스 꽃이라고 불리워요, 꼭 크리스마스 장식품같이 생겼죠. 메리 크리스마스!”     


 기분 좋은 대화였다. 꽃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대화였다. 내 손에 쥐어진 꽃은 붉었다. 그 붉음은 붉음이 더해지다 못해 검붉었다. 얼핏 보면 인공 색소를 입힌 듯 명확한 색을 띠고 있는 그 꽃은 그렇게 일요일 아침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있었다.     


 집으로 와서 꽃을 대리석으로 된 창틀 위에 올려놓았다. 창 뒤로는 흐린 구름 사이로 잿빛 도시가 그려져 있었다. 꽃은 흐린 도시 사이로 더 붉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내뿜고 있었다. 꽃은 생기를 잃어버린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꽃은 피어나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꽃을 선물하는지 알 것 같았다. 꽃을 받는 순간의 그 느낌은 다른 선물을 받았을 때의 만족감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 비록 짧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격정적이고도 쾌락적이었다. 과거에도 몇 번 꽃을 받아보았지만 이런 느낌은 없었다.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마 여러 요인들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비가 추적이는 안개 낀 아침, 지나가던 행인들, 쓸쓸한 감정의 소용돌이,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등. 나이가 먹어가면서 꽃에 열광하는 이유를 조금씩 알 듯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꽃에 대한 감정들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받아본 자들이 줄 수 있고, 느껴본 자들은 줄 수 있는 것이리라. 이제 소중한 사람에게 꽃을 선물해야 할 시간이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혜류입니다.

오랜만의 관전수필이네요. 수상 이후  바빠서 시간이 없었네요. 

이제 조금씩 한가해 집니다. 12월 한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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