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이 겨울 마음을 위로할 단 하나의 낭만
겨울밤이 깊어간다. 약간의 술기운에 기대어 작은 공간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본다. 시끌벅적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을 먼저 각자 조그만 의자에 앉힌다. 옷깃 사이로 품어온 무거운 냉기가 공간의 따스함과 부딪혀 차분히 내려앉는다. 회심의 미소가 가득한 입꼬리를 타고 겨울밤의 적막이 소소한 웅성거림으로 바뀐다.
작은 추억의 흐름은 서로의 냉기를 잠재우고 빛바랜 따스함을 가져다준다
구석에 있는 난방기로 걸음을 옮겨 버튼을 눌러본다. 팽팽했던 냉기 가득한 공기의 탄성을 단숨에 깨트리는 듯한 난풍(暖風)의 역습이 시작된다. 잠시 차가웠던 마중물의 바람은 금세 따뜻한 휘몰아침으로 바뀌어 공간을 차곡차곡 채워 나간다. 서서히 밀려드는 따뜻한 공기를 뒤로 하고, 옆에 있는 하얀 라디오를 켜본다. 내일의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에는 차분한 DJ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간 노래들이 방송을 장식한다. 그들의 노래와 목소리는 함께 하는 이들의 기억을 헤집고, 추억을 돋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그들의 작은 추억의 흐름은 서로의 냉기를 잠재우고, 빛바랜 따스함을 가져다준다.
이제 어느 정도의 분위기를 조성한 후 해야 할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커피를 내리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래 저래 정성이 들어간다. 바리스타처럼 전문적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필요한 과정이 있다.
먼저 은박 봉투에 들어있는 원두를 분쇄기에 넣어야 한다. 원두를 분쇄한 후에는 그 향이 쉽사리 날아가기 때문에, 현재 있는 인원만큼의 커피량을 잘 조절해서 넣는 것이 중요하다. 봉투를 열자 구수하고 매혹적인 커피 향이 코 끝에 물씬 풍긴다. 커피 향은 곧 공기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 각자의 코끝까지 단숨에 도달한다.
아 커피 향 너무 좋다.
각자의 입에서 연신 탄성이 쏟아진다. 그랬다. 알코올이 들어갔지만 그들의 코는 아직까지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코끝을 모두 스친 커피 향은 마법의 가루처럼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초콜릿 색의 작은 스푼은 그 사이 반복적으로 분쇄기에 동글동글한 원두를 퍼 나르기 시작한다. 한 스푼, 두 스푼. 이윽고 일정량만큼의 원두가 분쇄기에 담기면 버튼을 누른다. 잠깐의 소음 사이로 원두가 밀가루처럼 갈린다.
원두와 적절한 비율의 차가운 물은 서로 간의 아름다운 결합을 통해 한 방울씩 그들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똑똑 거리며 그들은 보석 같은 물방울을 자아낸다. 조금씩 진득한 커피 향이 공기 중에 묻어 나온다. 그 사이 함께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차츰 깊어진다.
이제 초를 켤 차례다. 조명을 낮추고 향초를 켜본다. 조명은 너무 밝아도 어두워도 안 좋다. 적당히 상대방의 얼굴이 어스름하게 보일 정도면 이야기 하기 가장 좋은 조도이다. 향초를 켜자 진하지 않은 비누향이 공기 중에 은은하게 떠있다. 난방기의 따스함 위로 향초의 향이 부드럽게 떠있고 그 사이를 커피 향이 부유한다. 아 이 아늑하고도 행복한 기분. 이 평온한 기운을 모두들 느꼈는지 조금씩 말이 줄어들고 내음을 즐기기 위해 침묵으로 빠져든다.
커피잔에 커피를 쪼르륵 따른다. 검은 커피는 커피에 부딪히며 아련한 거품을 만들어 낸다. 커피를 따르고 각자의 앞에 잔을 달그락 거리며 놓아주면, 사람들은 조그만 커피 손잡이를 잡고 호로록 거리며 진한 커피 향을 음미한다.
진한 커피와 빵, 그리고 휴식
그 사이 커피와 함께 할 수 있는 빵을 준비해야 한다. 커피만으로는 입이 심심할 수 있으니 약간은 딱딱하지만 씹히는 맛이 있는 담백한 빵을 칼로 잘라 조그만 빵도마 위에 올려본다. 이미 다들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상태이어서 빵에 쉬이 손이 가진 않지만, 빵은 그 존재만으로도 이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그렇게 그들은 한 손에 커피를, 한 손에는 빵을 들고 각자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손님을 맞이 한다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서로 간에 행복한 시간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손님맞이의 낭만이 아닐까.
<작가의 말>
겨울밤의 낭만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