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여관과 고암 이응노 생가터- 01
이번 연재 콘텐츠는 한국 도로공사 쪽의 의뢰를 받아 여행작가로서 진행하게 된 콘텐츠입니다. 한국 도로공사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고, 대신 분량 문제로 브런치에서는 조금 더 디테일한 내용들이 실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문화예술과 함께 떠나는 여름 여행>
2. 수덕여관과 고암 이응노 생가터-02
3. 메밀꽃 필 무렵을 찾아 떠나간 평창 이효석 문학관-01
4. 메밀꽃 필 무렵을 찾아 떠나간 평창 이효석 문학관-02
5. 담양 죽녹원 대나무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6. 담양 메타쉐콰이어길에서 찾은 시원한 여름
7. 미정
8. 미정
2ㅅ
정말 덥다. 8월의 여름은 태양의 온도만으로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거기다 습도의 장막이 한풀 더해지면 그야말로 찜통더위다. 이런 더위를 이겨내는 슬기로운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몇 가지 꼽으라면 시원한 곳에서 발을 담그고 독서를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너무 진부하다면 문화예술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따분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름을 피하는 법은 고요함 속에 답이 있다.
우리 사실 너무 지치지 않았는가. 직장 상사의 잔소리, 취직 걱정, 돈걱정, 사람 걱정. 휘몰아치는 세상의 중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다. 여행의 스타일도 이제는 고요함을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오감의 공해를 피해 지친 마음을 달랠 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여름 여행의 콘셉트는 '느림'이다. 느림의 미학을 찾아갈 수 있는 몇 곳을 방문해 보았다.
여행의 스타일도 고요함을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공기의 습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집에 있어도 덥고 나가도 더운 그런 날이었다. 그럴 바엔 야외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후텁지근함을 떨쳐버릴 곳을 고민하다가 문득 한 곳이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그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위해 코스를 연구했다. 코스는 크게 2개의 장소로 나뉘었다. 예산 수덕여관을 방문한 뒤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터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수덕여관은 이응노 화백이 생전에 작업 활동을 하던 곳이고, 생가터에는 이응노 화백의 생가와 전시관이 있었다.
첫 목적지인 수덕여관은 고암 이응노의 작업공간이었다
첫 목적지는 수덕여관이었다. 고속도로를 타자 지평선에는 미처 흩날리지 못한 빗방울들이 먹구름이 되어 포진해있었다. 잿빛 하늘과 아스팔트가 맞닿은 저 지점에는 우리의 목적지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평일이라 차는 막히지 않았다.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충남 예산의 수덕사.
수덕사도 충남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찰이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주차를 하고 수많은 산밑 한정식 집을 지나면 수덕사의 입구가 나온다. 거기서 대략 15분 정도 산림욕을 하며 걸어올라 가면 수덕여관이 나온다. 여관이라고 하면 모텔 등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의 여관은 벌써 기십년의 풍화작용을 머금고 세월이 박제되어 버린 그런 곳이었다. 이곳이 바로 고암 이응노 선생이 생전에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1944년에 화백이 구입한 이 수덕여관은 화백의 작업공간이자 쉼터였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예술가들은 아지트적인 그들만의 작업공간과, 예술적 온도가 맞는 그들의 연인을 통해 영감을 받곤 했다. 아마 이응노 화백도 이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실제 15여 년 정도 머물면서 수덕산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했다고 하니 이곳의 고즈넉한 풍경은 그의 영혼을 울리는 장소였음이 짐작된다.
역시 다른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훔쳐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역시 다른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훔쳐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여관의 입구에는 성인 남자가 팔을 벌려 안을만한 크기의 돌 간판이 있다. 간판도 어찌나 예술가적인지. 작은 나무에 기대 여진 돌 간판에는 수덕여관이라는 네 글자가 판본체 형태로 파여있다. 이끼와 풍화 작용을 거쳐 이제는 낡은 녹색 빛을 띠는 간판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들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된다
간판 옆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ㄷ’ 자 모형을 한 전형적인 농가 모습의 여관이 보였다. 초가를 지탱하고 있는 낡은 기둥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새롭고 깔끔한 것이 좋은 세상이지만, 조금은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들이 그 누군가에겐 위로가 된다. 낡은 기둥, 녹슬어버린 손잡이, 삐걱대는 대문 은 주변의 녹음과 어울려 한편의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대문을 열고 지방을 넘어가면 안마당이 나온다. 안마당은 여러 칸의 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마당에서 아늑한 예술적 온도가 묻어 나왔다. 한적한 공간에서 소박한 내음이 흐른다. 낡았지만 마른걸레로 잘 닦인 마룻바닥에 앉아보니 고암 화백이 왜 이곳을 사랑했는지 느낌이 왔다. 풍경은 살아있고 죽어있는 것은 내 마음뿐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으니, 여름 소리가 들린다. 바람 담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웅성거리는 숲. 그냥 이대로가 좋았다. 고요하고 서늘한 느낌이 가득 찬 이곳은 더위도 범접하지 못하는 곳이 분명했다.
앉아 있으니 작업공간 주인의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생가터를 향해 출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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