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보고를 찾아가다

파주 지혜의 숲을 방문하다

by 혜류 신유안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겉과 속이 모두 아름다운 존재가 있다. 바로 책이다. 책은 예부터 그들이 품고 있는 내용으로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책 속의 활자는 인류의 삶을 잉태했고, 인간은 항상 종이에 갇힌 알을 깨고 태어났다. 하지만 책은 속만 아름다운 추남은 아니다. 얇고 부드러운 종이에 빼곡히 적힌 활자, 차곡차곡 쌓여있는 종이의 입체감 있는 사각형,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길 때 손 끝에 스며드는 매트한 촉감, 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고유의 향기. 이 모든 요소들은 내외적으로 책을 완벽하게 완성시킨다. 그래서 책은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아프로디테의 옷깃처럼 인류에게 축복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러한 책이 한 두 권도 모자라 수천수만 권이 모여있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고 공간 예술이다. 이 미적 결정체는 <지혜의 숲>이라는 적절한 이름으로 명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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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출판단지 내에 있는 지혜의 숲을 들어서면 건물 3~4층 높이의 거대한 책장에 압도당한다. 특히 책장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노라면, 흡사 영화 등에서 일부 선지자들만이 일반인들 몰래 소통하고 있던 비밀의 공간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신비로운 공간이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유롭게 이곳에서 책을 읽고 여가를 보낸다.


지혜의 숲은 학자나 지식인, 연구소 등에서 기증한 도서들로 차 있다. 기증자들은 본인이 평생 읽고 연찬한 책들을 하나의 공간에 모아 놓음으로 인해 공유 지식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책이 가득 차 있었다. 책 사이에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혜의 숲을 보면 책과 사람은 원래부터 그 근본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책은 인간으로부터 만들어졌고, 인간은 책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삶은 기록의 산물이며, 인간은 기록에 의해 발전해 나간다.


그곳의 건물들은 임의적이든 아니든 붉은 녹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낡아 보인다기보다는 시간의 분진을 가득 끼얹고 거대하게 앉아있는 고성(古城) 같다. 아마 처음부터 인테리어를 하는 이들이 이리 멋스러운 디자인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책에 쌓인 지식들은 어찌 보면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때에 따라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고즈넉하게 만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지혜의 숲은 책과 닮아 있다. 책을 읽는 것은 이런 지혜의 숲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경한 곳을 탐험하듯 신비롭고 벅찬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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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건물은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가치를 발한다. 지혜의 숲 건물과 사람이 함께 있는 풍경은 그 어떤 것보다 자연적이고 여유롭다. 사람과 무생물과 책이 함께 만들어 가는 그곳의 풍경은 아련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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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아름다운 가게'가 있다. 아름다운 가게는 집안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던 중고 물품들을 기부하고, 이를 판매하고, 판매대금으로 우리 사회의 어려운 곳을 돕는 곳이다. 그래서 지역의 아름다운 가게들을 방문하면 옷, 접시, 가방, 장난감등의 다양한 제품들이 많이 비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의 아름다운 가게는 다른 곳의 그것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본 아름다운 가게는 자그마한 서점이다. 그랬다. 이곳은 중고 책들로만 공간을 가득 채운 특별한 가게였던 것이다. 옆에는 방문한 이들이 간단하게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책들은 새로운 준비를 맞이할 준비를 끝내고 책장에 전세살이를 하고 있었다. 책이 가득한 아름다운 가게는 그것만으로도 보물섬이었다.



지혜의 숲은 방문 만으로도 풍만한 휴식을 선사했다. 건물 사이로 부드럽게 부는 바람에서는 책의 향기가 묻어 나왔다. 책의 향기에 사람들은 감화되고 부드러워진다. 마음이 부드러워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행복과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엄마의 입에는 부드러운 웃음이 걸려있고, 엄마의 손을 잡고 앙증맞은 걸음을 옮기는 아이의 눈에는 희망이 스며있다. 어깨를 살짝 감싸고 걸어가는 연인의 눈은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계획했고, 갈색 모자를 눌러쓴 나이 많은 노신사는 책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건물 사이사이를 산책했다. 그들은 지혜의 숲에서 어떤 지혜를 꿈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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