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갖힌 사람들

우리는 얼마나 규정지어져 있는가

by 감성수집가







틀 1. 2008



밤늦은 지하철 안전문이 열렸다. 늦게까지 약속이 있었던 날이었다. 거의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헐레벌떡 들어선 지하철은 막 막차가 들어올 예정 이었다. 숨을 고르고 을시년스러운 지하철 역사를 둘러보았다. 술에 취해 양복을 풀어헤친 직장인 한명과 한창 입시공부를 끝내고 거북이 등딱지 같은 가방을 둘러메고 피곤한 듯 이어폰을 끼고 서있는 고등학생 한명이 서있었다. 이미 지하철은 거의 영업이 끝난 시간이라 지하철의 안전문은 개폐가 되어 있었다. 검은 구멍의 지하도로 후텁지근하고 끈적한 바람이 불어왔다. 먼지가 내려앉은 낡은 커피 자판기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다섯개의 주황색 플라스틱 의자 하나에 몸을 뉘이듯이 앉았다. 하루의 피곤함이 발끝에서부터 밀려들었다.


반대편 승강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올라가는 노선이라 저쪽편은 이미 마감이 되었나보다 라고 생각을 할때 즈음 계단으로 사람 한명이 내려왔다. 평범한 반팔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서류 가방을 뒷짐지듯 들고 내려오는 그는 매우 평범한 아저씨였다. 아니 그 누구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아들이었을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어 보였다. 걸음이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표정에서 풍겨 나오는 삶의 무게와 낡은 운동화가 걸음을 무겁게 보이게 만들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 하는듯 했다. 거래처와 약속이 있었을까. 잔금을 받지 못해서 소주라도 한잔 했을까. 하던 영업이 잘 되지 않았을까?

그는 그의 틀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세상 속에서 숨쉬고 있었다. 그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온전히 그의 세상은 아니다.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밟혀서 완성된 세상. 기분좋은 승리라고 보기 힘들다. 상처뿐인 영광. 그 속에서 그는 살고 있었다.


또 한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가방을 들고 씩씩하게 걸어들어 오는 남자. 그의 걸음걸이는 절도가 있었다. 힘있게 걸었고 오랜동안 몸에 베여있는 까다로울 것 같은 성격이 묻어났다. 그의 틀 속에 모든것은 정확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결벽증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반대로 옆집 아저씨 같은 성격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도 그의 세상을 독점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틀 속에 산다


틀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기도 하고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틀은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데, 나이가 한살 한살 먹으면서 이 틀의 벽돌을 조금씩 쌓아간다. 성격에 따라 누군가는 견고하게 아기 삼형제 이야기에 나오는 셋째처럼 짓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헐겁게 짚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사각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모형으로 짓기도 하고 둥글둥글하게 짓기도 한다.


세상에 절대적인건 없다. 그래서 이 틀만큼은 견고하게 만들게 되면 좋지 아니하다. 모든것이 견고하게 단단하게 만든다고 좋은것은 아니다. 이러한 틀은 그 사람을 규정짓는다. 그리고 속박시킨다. 하지만 이 틀이 본질은 아니다. 이 틀을 벗어났을때 우리는 그를 깨우침을 얻는다.



틀 2.2008


'틀'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모서리가 깍인다. 사각형이 깍여서 원이 되기도 한다. 사각형의 모서리 부분은 포기, 체력의 한계, 삶의 찰나적 무상함 등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틀은 점점 좁아진다. 둥글어 보이지만 좁아진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아집을 버리고 둥글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