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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진득하게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

지금 잘 살고 있어요



 살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소리는 '넌 왜 하나만 진득하게 못해?'였다. 가족 친지들에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남들보다 계속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끊임없는 상실감이 밀려오곤 했다. 루저 같았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었다. 사진 찍는 일을 JOB으로 밥벌이를 잘하고 있고, 사진으로 개인 작업을 한다. 전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상 컨텐츠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이렇게 글을 끊임없이 쓰고 있다. 종종 강의도 나간다. 그리고 내 삶에 만족한다.


그러다가 문득 돌이켜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나만 진득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잘 살고 있는데."


이렇게 느낀 이후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젠 누군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말한다. 


“하나만 해가지고 이 세상 어떻게 살려고?”     


 다행히 세상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하나만 파서 장인이 되곤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기에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환호성을 지른다. 와우! 나 같은 사람도 이 세상에 섞여 잘 살아갈 수 있으니까.     

 이는 어떤 방법이 더 좋다의 문제가 아니다. 이 차이는 개인적 성향과 사람마다 삶을 습득하는 방법이 다름에 기인한다.      


 성향


 난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어릴 때부터 그러했고 커서도 가만히 앉아있으면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계속 앉아있으면 계속 오그라들다가 콩벌레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콩벌레라고 아는가. 지나가던 콩벌레를 건드리면 위협을 느껴 콩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버린다. 근육들이 서로를 잡아당기며 제발 움직여라고 소리 지른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면서 더더욱 오래 앉아있는 것들을 못 견디게 되었다. 이런 내가 20대 때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대학 때 법학을 전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하루 15시간 정도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면 1년 만에 합격한다고 해서 앉아있어 보았으나 1시간 정도 지나니까 기립근을 타고 이 오그라듬이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하는데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10분 정도 담배도 피우고 스트레칭도 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14시간만 하는 거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순간적인 집중력은 참 좋았다. 책을 후루룩 읽어나갔다. 그래 이렇게만 하면 합격이야. 그러다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느끼기에는 억겁의 시간이 흐른 후 시계를 보니 50분이 지났다. 맙소사.      


 이건 성향의 문제였다. 난 애초부터 앉아서 재미없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끈기와 엉덩이를 가지지 못했다. 내겐 없는 능력이었다. 마블의 영웅들도 다들 자기 능력만 가지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는 능력을 발휘하겠는가. 무거운 엉덩이는 시험 합격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치였다. 


 그렇다고 인생이 패배적이냐고? 그러하진 않았다. 대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다녔다. 무슨 일을 배우던지 빠르게 습득해나갔다. 초반 스파트가 매우 빨랐다. 싫증을 잘 내기에 계속 새로운 방법을 찾거나 아이디어들을 내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일들에 적합한 직업들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기획! 그래 무언가를 기획하는 일에는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빠르게 체계를 잡는 것들이 중요했다. 그래서 기획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기획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고, 지금의 나는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든다.      

삶을 습득하는 방법     


 삶을 습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익히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스며드는 습득법도 있다. 또 한 분야를 깊게 파서 오의[五意]에 이르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여러 분야를 습득함으로써 각각의 분야를 더 심오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각자 선호하는 방식이 있지만 나는 마지막 방법을 선호한다. 

 이것은 흡사 우물을 파는 방법과 비슷하다.


 한 농부가 우물을 파려 하고 있다. 지하수를 얻기 위해서는 깊이 땅을 파야 하는 작업이다. 처음에 농부는 반경 2m 정도의 반경으로 우물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파내기 시작하자 한계점이 찾아왔다. 몸이 들어가기도 힘들었고, 기계로 파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농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더 넓은 반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근처 여기저기 땅을 파기 시작했고 이러한 웅덩이들을 연결해서 파내기 시작했다. 땅은 넓게 파이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더 깊이 파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농부는 이곳에 우물을 만들고 비로소 성공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지식도 이와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깊이 익히기 위해서는 총체적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잡다하게 많은 것들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잡다한 것들을 많이 경험하기 위해 주변에서 끈기가 없다느니, 왜 이것저것 하느냐 등의 잡소리를 들을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이 총체적 시각의 과정을 거치기 전에 약간의 시련을 겪을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훌륭하게 무시해주고, 나만의 방법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익히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통찰력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면서 더 빠르게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과 영상은 맞닿아있다. 그리고 글과 기획력은 맞닿아있다. 콘텐츠는 이 모든 것을 수렴하고, 이것들은 글과 강의를 통해 표출된다. 그리고 이렇게 표출된 무언가는 자동으로 정리가 되고, 나의 단편으로 축적된다.


 적어도 나는 그래 왔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어울리지 않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옳고 그르지 않다. 


본질은 무엇인가


본질은 어떠한 방법이 내게 더 효율적일 것이냐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방법적 측면에서 강요가 있어선 안될 것이다.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끈기가 없어 보이면 걱정될 수 있겠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방식을 먼저 관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관찰 없이 잘 모르는 상대에게 조언을 하는 것은 자칫 그를 혹은 그녀를 망칠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이유도 관찰 없는 부모의 조언때문이었으리라. 조언은 부모에게는 사랑의 표현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상대방의 의사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발현되었을 때에는 '스토커'가 될 수 있고, 가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위로를 건네고 싶다. 

 

 지금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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