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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생산해내지 않는 시간의 의미성

본인의 버튼을 찾아야 한다




 가만히 앉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흘려보내는 시간.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않는 시간들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분주하고 무엇인가를 생산해내야 하는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미션이다. 


 언젠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내게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물려받은 재산이 이 있는 것도 아니고, 로또를 맞을 확률 역시 없을 것만 같은 삶의 형태소를 가진 평범한 30대의 남자로서 '돈'만큼 가치 있고, '돈'으로 환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던 내 앞에 '툭' 던져진 결과는 바로 '시간'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여러모로 생각해보아도 '시간' 밖에 없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모두에게 주어졌기에 내게도 주어진 것. 남들보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이것들을 특별히 만드는 것만이 이 평범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 컨텐츠를 제작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었다. 글을 썼다. 그리고 남는 시간들은 더 좋은 컨텐츠를 생각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시간'의 좋은 점은 '과거'도 '현재'도 모두 끌어다 쓸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기억'과 '추억'도 내게는 '돈'이 되었다. 이렇게 과거의 것들을 꺼내어 쓴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무형의 워커홀릭이 되어버렸다. 매일 사무실에 나가 별을 보고 출근했다가 별을 보고 퇴근하지는 않았지만, TV를 틀어놓거나 밥을 먹으면서도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와이프는 제발 뇌를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밥을 먹을 때 만이라도 밥을 먹는데 집중해 봐요.
하지만 나는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면서도 핸드폰으로 다른 이들의 컨텐츠들을 탐독하곤 했다.


 그러다가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머리가 혼란스러워져 왔다. 많은 정보들과 가능성이 눈으로 귀로 들어와 뇌 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에 혼란이 찾아왔다. 다들 재미있어 보였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씩 따져보면 그 분야에 정통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관련 컨텐츠를 만들어 낼 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마음만 조급하고 제대로 진행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으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스스로를 자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감기에 걸린 코처럼 뇌가 단단히 막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꼬리들이 다 잘린 느낌이었다. 힘껏 코를 풀어보지만 어느새 또 막혀 있는 코처럼 생각의 또아리는 더 이상 풀릴 줄을 몰랐다. 감정의 수렁은 더 깊어졌다. 


말 그대로 휴식에 집중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말에는 아무 행동을 포함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말 그대로 '휴식'에만 집중했다.


 느긋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었다. 풀벌레 소리를 느끼고, 바람의 소리를 듣고, 노을의 바람을 느꼈다. 카메라를 들고 상업사진이 아닌 나만의 사진을 찍었다.  아무 의미 없는 활동 같았지만, 오랜만에 순수한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월곶면 03.2019





월곶면04. 2019





월곶면05. 2019

 

 마음이 고요했다. 잠깐의 잡념들이 괴롭혔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 처절한 전쟁으로 터져버릴 것 같은 머릿속이 가라앉았다. 그러고 나니 머릿속에 걸린 독감이 치유되는 듯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게 참 이렇게 좋은 거구나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게 되었다. 한동안 브런치를 쓸 수 없었던 이유 역시도 좋은 컨텐츠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는데, 이로 인해 엄청난 시간을 강박적으로 생각해왔었고 자료를 모았으나 그 역시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내려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 비로소 이렇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맨 처음 올라오는 수많은 생각들을 흘려보내야 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 이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들이 멈춰질 수 있는 '버튼'을 만들어야 한다. 


 저녁노을이 질 때 홀로 나와 어딘가에서 이 멋진 광경을 바라본다던지,

 어슴푸레 아침의 푸르름이 돌 때쯤 일찍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며 그냥 앉아 있다던지

 아니면 정말 내가 재미있어하는 소소한 일, 나 같으면 사진을 한다던지...


본인만의 버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본인만의 버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도구로 조그마한 팽이를 돌린다. 꿈에서는 이 팽이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팽이가 쓰러진다. 현실과 꿈이 구분이 안 되는 영화 속 세상에서 주인공들은 이 팽이로 둘 사이를 구분한다. 팽이는 기본적으로 버튼이다.

 '사회적 나'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구분해주는 버튼이 필요하다. 이러한 하나의 기준을 정해놓고 필요한 순간은 이 버튼을 눌러 지친 사회적 나에서  내 안의 웅크리고 있는 나로 모드 전환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나 스스로를 쉴 수 있게 만든다.

 이제 좀 쉬어야 한다.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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