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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종합검진을 받았다. 여기저기 통증 때문에 매번 걱정만 하다가 이번에는 한 번쯤 해봐야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만큼 몸이 아팠고, 수치나 통계 등의 객관적 수치로 몸을 판단해 심적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 검진 후 몇 가지 증상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약을 먹어야할 만큼 악의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높은 수치들이었다. 그리고 대장에 용종이 발견되어, 그것을 제거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검진 한 달 후 나는 암병동 소화기 내과로 가서 용종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대장에서 보이지도 않는 무지깽이를 떼어내는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안정제와 진통제를 투여받고, 잠이 들었다. 그 사이 모든 과정은 끝나 있었다. 


 수술을 받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길. 사람들은 슬로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택시에서 겨우 겨우 머리에 중절모가 얹혀있는  한 노인이 내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들인 듯 한 중년이 그의 양팔을 부축하며 휠체어에 앉히고 있었다. 

 할머니 한분이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를 이의 부축을 받고 힘겨운 걸음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외에도 병원 의자에 앉아있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에는 '지침'이 묻어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병원을 내 집 드나들어 이제는 슬프게 익숙해져 버린 피곤. 그 핏덩이들이 보호자와 환자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폐암


 우리 집도 그러하다. 아버지는 폐암이다. 5년 전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신 날 폐암 말기로 6개월 정도 시한부 선고를 받으시고, 아버지는 희안하게도 지금껏 생존해 계시다. 뇌까지 전이되어버린 암덩어리와 치매를 부여잡고 말이다. 쓰러지시며 같이 치매가 오신 아버지의 일상은 평온하다. 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푸른 잎이 열리고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에 눈이 쌓여도 우리 아버지의 머릿속은 항상 따스한 봄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겨울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쓰러지고 난 후 어머니의 계절은 꽁꽁 얼어버렸다. 폐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아버지는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한 번씩 집을 가면 어머니의 얼굴과 목소리, 숨결에는 '지침'이 묻어있다. 그리고 그 '지침'의 숨결을 감추려 하는 안쓰러움이 온몸에 묻어있다. 


 아들인 나로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내 가정을 가누며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드릴 재력이 아직 내겐 없다. 그래서 슬프다. 그렇다고 매번 방문해서 아버지를 케어하기에도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나는 어머니에게 그 '지침'의 짐 더미를 오롯이 넘기고 산다. 



죽음으로 가는 몇 가지 과정


  우리는 살면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몇 단계 거친다


 1. 생의 순간

 2. 생과 필연적 죽음 사이의 불안감

 3. 죽음과 죽지 못함 사이의 순간

 4. 죽음과 삶의 경계선

 5. 죽음의 순간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2번의 순간을 느끼며 산다. 몸이 여기저기 아파오며 내게도 여지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병원에서는 3번과 4번의 순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 집은 3번의 순간에서 배터리가 다한 시계처럼 멈추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는 '삶도 죽음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삶도 아무것도 아니고, 죽음도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 살 뿐이고, 죽음이 다가오면 멈출 뿐이다. 삶도 죽음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죽지 못하는 자들의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이는 큰 사건이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지금 매일이 20대의 젊은 매일과 같을지도 모른다. 꿈속에서는 20대의 신체와 정신을 가진 한 젊은이로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죽지 못함 사이에 있는 어머니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간은 평생 민폐만 끼치고 간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평생 민폐만 끼치고 간다. 태어나서는 부모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 힘들어 부모의 잠과 시간을 뺏으며 크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피와 땀으로 성장한다. 잠깐의 독립적인 시간을 보내고 늙기 시작할 때 인간은 가족들에게 의지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죽음이 찾아올 때 제때 죽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그러니 얼마나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인가. 의도하지 않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설계되어있는 삶. 그것이 인간의 삶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서글프다. 

 또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세상엔 참 남길것들이 많네요


blog: hestory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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