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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서울에서 보내며

행복을 느끼는 작은 순간


추석이라 본가에 왔습니다. 서울 그 숨 막히는 도시. 강북 어느 구석에 위치한 어머니의 동네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습니다. 지속적인 변화와 예산으로 새로움을 덧대어 보지만 서울 특유의 구도심적 감성은 구석구석 존재합니다. 길가의 가로등, 비정형적으로 갈라진 바닥들, 다닥다닥 붙어있는 빌라촌, 갑자기 들리는 이웃의 고성들..  어제만 해도 차 2대가 간신히 지나가는 골목에서 싸움이 났습니다. 주차문제 때문에 나이 많은 아저씨와 청년 셋이 붙었습니다. 놀랍게도 나이 많은 아저씨는 큰 목소리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덕분에 골목은 명절답게(?) 시끌시끌했습니다.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제게 이러한 도시의 표현법이 아주 낯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널찍널찍한 경기도에서 10여 년을 살아오다 보니, 이젠 이런 서울의 모습이 조금씩 낯설어지기 시작합니다. 창문을 여니 바로 앞에 옆집 창문이 대문짝만 하게 보입니다.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누어도 될 만큼 가까운 옆집 빌라와 우리는 단절된 사이입니다.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이렇게 양옆 사방으로 도미노처럼 쌓인 빌리들로 인해 창문을 열어놓아도 실내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습니다.


어머님은 항상 집이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처음에는 왜 그럴까 여러 의문을 가졌지만, 명절이 되어 며칠간 이곳에 있다 보면 답답증이 납니다. 물리적으로 답답한 공간입니다. 누군가 집채만 한 부채로 저 멀리서 태풍처럼 몇 번 부쳐주면 조금은 시원해질 만도 한데, 그 마저도 앞뒤 빽빽이 들어찬 건물들로 인해 쉽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이 집에 계실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홀로 하루에 24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자유롭게 나다니지도 못하고 계시지요. 나이 들어 홀로 버틴다는 것은 아마 외로운 일일 겁니다.  그것은 대략적으로 상상은 됩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기에 확실히 그 외로움을 안다고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육아를 하며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다 보면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과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너무나 전폭적이라 몇 마디 말이나 수천 개의 문장으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설명한다 하더라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단지 이렇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겪어보기 전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경험적인 부분은 지금의 1/1000도 되지 않는 것이라고. 이런 경험 후 바뀐 점이 하나 있습니다.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거나 거만하게 제 의견을 표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는 척을 많이 하더라도, 우리는 그닥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도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추측할 뿐이죠. 어찌 됐거나 이러한 심리적 물리적 요소들로 인해 어머님은 집이 답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심리적 외로움은 없었지만 서울에 위치한 본가는 확실히 답답했습니다.


분명 하늘은 높고 청명해 공기 중에 시원한 바람이 충분히 있음에도 선풍기를 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방에 있는 오래된 선풍기를 가져와 틀었습니다. 오래되어서인지 바람이 그닥 시원하지는 않았습니다. 틀어놓아도 시원하지 않아 어찌할까 고민하다 회전을 시켜놓았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시원해집니다. 계속 바람이 불 때는 몰랐던 시원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살랑대는 가을바람 같습니다. 야외에서도 가장 기분 좋아지는 때는 갑작스레 불어오는 바람의 시작을 느낄 때입니다. 선풍기도 회전을 시키니 돌아올 때마다 바람의 시작이 느껴졌습니다.



선풍기의 바람을 느끼며 작은 지혜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항상 부족해서 힘들다 말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중요하고도 작은 포인트를 아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죠. 양으로 해결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여기에 행복의 시작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은 어머님을 모시고 바람을 쐬러 나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답답한 공간을 탓할 것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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