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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준비하다 망했다



 근 2년간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했다. 쓰지 않았다기보다는 쓰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바쁜 일이 많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글에 대한 중압감 때문이었다. 글쓰기에 가장 피치를 올렸을 때가 <관전 수필>이라는 매거진을 만들고, 머릿속에 쌓여있던 생각을 한창 풀어낼 때였다. 그전에도 블로그에 간간히 글을 올리긴 했지만, 꾸준히 쓰지 못했다. 그러다 브런치라는 글쓰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만나고 신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들이 포털 메인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글들이 모여 북프로젝트 <금상>을 받았다. 그때의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내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뭔가 앞에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파란 기운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더 많은 글을 써서 계속 책을 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 걸림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을 내기 위해선 처음부터 기획을 잡아서 글을 써야 돼. 무슨 주제로 글을 써볼까.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최대한 목차를 잡더라도 20편 정도는 잡아야 책이 될 텐데, 1편에 몇 장의 분량이 들어가야 할까. 이런 내용은 너무 유치하지 않을까? 

수많은 생각의 파편이 키보드위의 손가락을 덩굴처럼 잡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 전까지는 글을 써보아도 쓸데가 없을 것 같았다. 글의 최종 목표가 책이 되어버리자 글은 이미 글의 효용을 잃어버렸다.


처음 내가 글을 쓸 때 글은 내 안의 것들을 표현하고 기록하는 항아리였다. 글을 씀으로써 내 것들을 정리해나갔다. 부정적이던, 긍정적이던 글을 쓰면 감정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결국 글의 첫 번째 목적은 '나를 위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를 위해'라는 목적이 스며들며, 한 글자도 쓰기 힘들어졌다. 


유튜브도 마찬가지였다. 유튜브를 하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공부했는데, 그들은 관객을 생각하고 그들이 어떤 감정을 가질 것인지를 고려하고 영상을 만들라는 말을 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나도 사진과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입장에서 타깃을 고려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을 하던 처음엔 '남을 위해 하는 일'과 '나를 위해 하는 일'은 구분 지어져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남을 위해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를 치유하기 위해 하는 일은 나를 위해 하는 일이다. 물론 나를 치유하기 위해 하던 일이 돈을 벌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나를 치유해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망상적인 글쓰기 시동 준비를 때려치우고 막무가내로 다시 글을 써보려 한다.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며칠 전의 술자리에서의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다.


연말이 되어 3여 년 만에 만난 형님이 있었다. 오랜 기간 지역신문기자를 했고, 책도 몇 권 냈던 전력이 있었다. 반가운 인사치레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글을 쓰기 힘들다 토로했다. 그때 형님이 이야기했다.


"우리 같은 놈들이 무슨 기획이야. 그냥 써. 자투리 글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세상에 사실 무겁고 심각한 것은 없다. 단지 무겁고 심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글이든, 사진이든, 철학이든 가볍게 생각하면 가볍고, 무겁게 생각하면 무거울 뿐이다. 그동안 나는 쓸데없는 무게에 짓눌려 이 한없이 가벼운 글쓰기를 멀리 했던 것이었다. 그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던가.


그리고 3일이 지났고, 나는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니 글이 술술 써진다. 내 글이 비록 달필은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고, 생각의 정리가 되는 글이라면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 1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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