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길 고양이를 부탁해 새로운 인연

길고양이 스토리#1

by 혜류 신유안



마음도 몸도 가난했던 시절. 드디어 겨울이 왔다.

겨울. 그날은 유난히도 뼛속까지 시린 칼바람이 불었다.

보름달이 유난히 밝았던 마당.

길 고양이가 빼꼼히 문을 열고 찾아왔다.


'안녕'


'응. 어서 와'


처음 본 녀석은 도망치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털이 아직 자리를 못 잡아 부성부성했다. 줄무늬를 띄고 두손 안에 폭 들어올 것 같은 크기. 아마도 이제 좀 엄마 품을 벗어나 뛰어다닐만한 크기였나 보다. 아니 그보다 조금은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꼬리를 한껏 치켜세우고는 살랑살랑 다가왔다. 약간의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손을 내밀자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너 참 고양이 답 구나.'


'그럼... 난 고양이잖아.'


그럼... 난 고양이잖아.



부엌으로 가서 먹을 것이 있는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우유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유는 고양이에게 먹여서는 안되지만 그 이외에는 정말 줄 것이 없었다. 우유를 다이소에서 1,000원에 판매하는 분홍색 플라스틱 그릇에 조금 부었다. 흘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양손으로 그릇을 잡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이 녀석은 내가 뭐라도 줄 것을 알았다는 냥 슬금슬금 다가왔다.


슬며시 분홍색 그릇을 가져다 노으니 슬며시 다가온다.

몇 번 코로 킁킁 밀어보더니, 게눈 감추듯 우유를 흡입했다.


'너 배고팠구나.'


'.......'


순식간에 먹어치운 우유 그릇을 핥고 또 핥았다. 우유를 더 갖다 주었다. 그날 아마 500ml 정도의 우유를 혼자서 다 마신 듯했다. 배가 불렀는지 배를 탕탕 두드리면서 누워있다가 저만치 달려갔다.


담배를 한대 태웠다. 시리도록 검은 공기 속으로 새하얀 연기가 발산됐다. 아름다웠다. 새하얀 연기는 달빛에 흡수되어 갔다. 달빛은 방아 찍는 토끼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세상이 모두 잠들어 있었기에 그랬을까 아니면 나의 착각이었을까. 토끼는 카운슬러였다. 그 날따라 방아 찍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옛 시절 어머니들처럼 그들은 묵묵히 방아를 찧으며 소리 없는 나의 상담에 화답해주었다. 겨울의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담배꽁초를 저 멀리 공터에다 던지고 손을 털고 들어가려는 찰나 아까 그 녀석이 쪼르르 달려온다. 역시 고양잇과는 고양잇과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슬리퍼 반경 30cm 앞까지 달려오더니 마치 슈렉의 고양이 같은 글썽글썽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라면 먹고 갈래?... 아니 들어와서 잘래?'


'끄덕끄덕'


그렇게 고양이와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아니 동거가 될지 생각 못했다. 다만 잠시 하룻밤 묵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천성이 길고양이라면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들어오니 생경한 환경에 움츠릴 줄 알았었는데, 이 녀석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무모했고 철이 없었다. 바로 책상 위로 벌떡 올라와 노트북 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책상위에 자리 잡은 길냥이. gimpo. 2014


'이 녀석 보시게나. 거기가 좋니?'


'끄덕끄덕'


어찌 되었건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냥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냥냥이도 그다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냥냥이라고 부르며 쓰다듬어주자 고양이 특유의 갸릉거림으로 동의를 표한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