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고양이를 부탁해 피천득의 인연에 기대어

길고양이 스토리 #3

by 감성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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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를 한껏 사서 개선장군처럼 문을 열었을 때, 길 고양이 그녀는 말도 없이 세입자가 되어 있었다. 따뜻한 난로 옆에서 가죽 가방을 자리 삼아 이 가죽 가방 내 깔개로 써도 돼?라고 묻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가죽가방을 차지하고 있는 길고양이.gimpo.2014



그 가죽 가방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기부를 하고 구매한 것으로, 당시 가장 자주 메고 다니던 메인 가방이었다.


‘야!’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눈만 깜박이는 무례한 그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수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이 녀석에게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낮은 한숨과 함께 이 녀석을 의자로 들어 올리고, 먹이를 주며 생각을 했다.



20141016_210129(수정)_HDR.jpg



난 이 녀석이 세입자라고 절대 괄시하지 않겠다.

월세를 내지 않는다고 쫓아내지도 않을 것이다.

밥도 꼬박꼬박 먹여주기로 생각했다.


우리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이렇게 문득 찾아온 너는 내게 어떤 의미일까.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놀랍도록 순수해 보인다. 혹자는 인연이라는 것이 매우 인과적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그 인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 만나는 인연의 소중함을 느낄 뿐이다.




일찍이 수필가 피천득은 인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여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는 얼마나 인연에 대해 관대한가. 우리는 모두 인연에 관해 얼마나 어리석은가.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우리의 인연을 인연인 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느낀다.


사람은 홀로 설 만큼 충분히 강하지만 홀로 살기는 힘들다


충분히 외로워 본 이들만 더불어 사는 삶에 감사할 줄 안다.


그래서 난 이 녀석과의 소중한 인연을 위해 집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내겐 기술이 없었다. 내가 가진 기술이라고는 사진 찍는 기술과 글을 쓰는 기술 등 현재 상황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잡다한 기술들만 그득했다. 근사한 집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고심하다가 얼핏 인터넷에서 고양이는 박스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키설키 만들어준 고양이집.gimpo.2014




그래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튼튼한 박스를 구해 주었다. 그리고 몇 장 안 되는 수건중 제일 두꺼운 놈을 골라한 장 깔아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듯 주변을 배회했지만, 곧 적응한 듯 박스로 들어가 몸을 뉘인다.

역시 고양이는 박스를 좋아했다. 몇 번 주억거리더니 벌써 잠이 들었다.


그렇게 길고양이 냥냥이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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