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보고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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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gimpo.2014
11월은 한 달 내내 김장을 하며 보냈다. 당시 9월부터 예약받기 시작한 김장 담그기 체험 대부분의 일정은 11월 한 달 간 진행되었다. 11월 한 달간 매주 혹은 평일에도 김장체험은 계속되었다.
체험행사는 성공적이었다.아무도 찾지 않아 덩그러니 놓여있던 을시년스러웠던 샌드위치 패널 건물에는 한 달간 천여 명의 체험 참가객들이 몰려들었다. 일련의 과정들은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서 진행하였다. 온라인 주문받기는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온라인 상으로 받은 주문들을 전화로 확인하거나 시간이 겹칠 경우 조율해야 했고, 고객 쪽에서 연락을 할 경우 연락을 받아 궁금한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 했다. 접수 과정은 거의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야 하는 노가다성 업무였다. 이러한 업무는 12월 초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나는 이 과도한 전화받기 업무를 2주 정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렸다.
그 당시 사람이 없어 기획, 홍보, 접수를 혼자서 다 맡아서 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엄청난 오산이었다. 하루가 25시간이 될 수 없듯, 한 사람이 이 세 가지 업무를 모두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자는 한 번에 여러 가지의 일을 할 수 없다’라는 통념을 나는 절대 깨지 못하고 있었다.
번잡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으면서 문서를 타이핑 하기에
나의 뇌는 너무 남성적이었다.
이렇게 정신없는 초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길고양이 냥냥이에게 거의 신경을 못쓰는 지경까지 갔다. 물론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난로 앞에서 밥을 챙겨주는 행복한 시간은 종종 가졌다. 이 녀석 역시 잠을 자고 있으면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잠을 자곤 했다. 대부분 내가 먼저 잠이 들고 내가 늦게 깨곤 했다. 고양이는 잠이 많은 동물이라 많은 시간을 잔다는데 이 녀석은 항상 나보다 적은 잠을 자는듯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낮에 사냥을 하고 왔었는지 느적느적 걸어와 먼저 골아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피곤해서 먼저 몸을 뉘이는 날엔 코를 골며 잤다. 잠이 얼핏 들었다가 고양이 코 고는 소리에 깨어보는 경우는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도 같이 사는 동거인이라 잠을 깨울 수는 없었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배려심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누워 있으면 장난이 치고 싶어서 싱긋 웃으며 소리도 없이 얼굴 쪽으로 걸어와선 오른쪽 앞발로 내 얼굴을 살포시 건드리곤 했다. 마치 힘들게 일한 평일을 보상받기 위해 주말에 느긋하게 TV를 보며 소파에서 쉬고 있는 아빠에게 칭얼대며 놀아달라는 7살짜리 여자아이처럼.
그런 경우 눈을 뜨고 있으면 계속 앞 발을 바꿔가며 건드리며 나의 반응을 즐기며 놀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몇 번 칭얼대다가 다리 쪽으로 내려간다. 다리 옆에 등을 기대 고선 같이 잠에 든다. 등을 기대면 이불 위 다리 한편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온기는 동물과 사람이 그리 다르지 않다. 따뜻한 위로와 안정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하나의 애정표현이었다.
우리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상대에게 무언가를 강요한다. 차를 탈 때면 차문을 열어주기를 원한다. 항상 배려심 가득한 목소리로 웃으며 이야기해주길 원한다. 기념일이면 선물을 요구한다. 사랑하냐고 물어보고 사랑한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한다. 지나가는 여자는 왜 보냐고 물어본다. 항상 애교를 피우며 귀엽게 말하길 원한다. 고분고분하길 원한다.
과연 이런 행동들에 사랑이 가득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행동들로 얼마나 오래 행복한가. 마약처럼 약효가 떨어지면 또다시 사랑받아야 한다고 느끼진 않을까. 약효가 떨어지면 금단증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강요한다.
이러한 강요는 사람을 죽인다. 사람의 마음을 죽인다.
아무리 공자 가라사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라고 했어도, 삶은 내용이 조금 더 중요하다. 오히려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는 것이 맞다. 진심이 담겨있는 행동은 상대에게 감동을 주지만 습관적인 행동은 마약과도 같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느껴지는 애정은 매우 아름답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한다.
이렇게 정겹게 지내던 어느 날 떨어져 지내야 할 일이 생겼다.
널부러져 있는 냥냥이. gimp.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