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체험행사는 12월 중순에 마무리되었다. 나는 12월 말 즈음하여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눈이 소복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던 어느 날 시내에 있는 로컬푸드 직매장으로 업무공간을 옮겼다. 농가와 로컬푸드 와의 거리는 대략 자동차로 20여분 정도 거리. 고양이가 따라오기에는 먼 거리였다. 당시 나는 당장 내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어 이 녀석을 데리고 가지는 못하고 이틀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밥을 챙겨주고 물을 챙겨주고 쓰다듬어주곤 했다.
그해 겨울은 그리 지났다. 그리고 봄이 왔다. 마른 가지에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싹은 겨울의 황량함을 품고 생명으로 피어났다.
어느 따뜻한 봄 업무차 농업기술센터를 찾아 갈 일이 생겼다. 2층에서 업무를 보고 오른쪽 끝에 있는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왔다. 기술센터 건물 1층에는 2개의 문이 있다. 한쪽은 다른 건물과 연결되는 중간문이고, 한쪽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장소와 연결되어있는 문이었다.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흡연장소로 나왔다. 흡연 장소에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었다. 옆에는 식용유 깡통에 흙을 채워놓은 재떨이들이 있었다. 만들어놓은 재떨이에는 담배꽁초들이 총총거리며 꽂혀 있었다. 그들은 마치 키재기라도 하듯 일자로 서서 하늘을 지고 있었다. 정자 주변은 잠시 앉을 수 있는 나무 벤치들이 놓여 있었는데 벤치에 앉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앉아서 쉬기에는 정자가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정자는 단단한 이음새로, 무릎 정도 오는 높이의 바닥은 앉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종종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하면 이곳에서 끽연을 하곤 했는데, 오늘은 여기에 손님이 한 명 더 있었다.
그것은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노란색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였다. 분명히 어린 티가 폴폴 나는 이 녀석은 아직도 이곳이 익숙지 못한 듯했다. 구석에는 둥근 모서리를 가진 사각형 모양의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구성된 플라스틱 재질의 고양이 집이 있었다. 녀석은 이 초라한 고양이 집에 목줄로 묶여 있었다. 늘어나는 검은 나일론 끈으로 만들어진 고양이 목줄은 펜던트 하나가 달려있었는데, 거기엔 sample이라고 적혀 있었다. 펜던트에 적혀 있는 단어가 샘플이라니. 뭔가 서글픈 생각이 왈칵 들었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집이라도 있지 않는가. 요즘 세상에 내 집 하나 가지기가 쉬운가. 왔다 갔다 하는 부동산 정책과 집값만큼 올라버린 전셋값, 늘어나는 월세. 어찌 보면 이 고양이는 안식처를 마련하지 못한 요즘 사람들보다 더 나을지도 몰랐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매우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고양이는 얼른 정자 밑으로 후다닥 뛰어 몸을 감추었다. 하지만 방법이 있으랴. 나일론 끈도 늘어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검은 나일론 목줄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 팽팽해졌다. 팽팽해지다 못해 정자 바닥의 모서리에 질근질근 썰려 이렇게 가다간 목줄이 끊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흡사 박을 타는 흥부의 톱질처럼 목줄의 움직임은 위태 위태했다. 나는 쪼그려 앉은 채 정자 아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정자 아래는 캄캄했고 나무판자 사이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스프라이트 무늬가 나 있었다. 그 사이에서 도깨비불처럼 반짝이는 녀석의 눈이 발견됐다. 내 눈이 어둠에 적응될 무렵 빛살무늬 로 전신 위장을 한 람보가 한마리 보였다. 그 눈빛은 두려움에 차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나 외로워’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앞발을 모으고 있었다.
정말 이 녀석은 지금의 도시인들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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