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를 부탁해 우리는 외로운 섬에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종이칼을 들고 다닌다

by 감성수집가





내가 다가가자 그는 매우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고양이는 얼른 정자 밑으로 후다닥 뛰어 몸을 감추었다. 하지만 방법이 있으랴. 나일론 끈도 늘어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검은 나일론 목줄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 팽팽해졌다. 팽팽해지다 못해 정자 바닥의 모서리에 질근질근 썰려 이렇게 가다간 목줄이 끊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흡사 박을 타는 흥부의 톱질처럼 목줄의 움직임은 위태 위태했다. 나는 쪼그려 앉은 채 정자 아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정자 아래는 캄캄했고 나무판자 사이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스프라이트 무늬가 나 있었다. 그 사이에서 도깨비불처럼 반짝이는 그 녀석의 눈이 발견됐다. 내 눈이 어둠에 적응될 무렵 빛살무늬 때문에 녀석은 전신 위장을 한 람보가 되어 있었다. 그 눈빛은 두려움에 차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나 외로워’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앞발을 모으고 있었다.




20140820_140504_HDR.jpg 외로움의 끝.gimpo.2014



정말 이 녀석은 도시인들 같았다. 항상 그들은 외로움에 절어 있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다. 하지만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아침 7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는 동안 집안은 각자의 시계가 돌아간다. 각자 기상하고, 각자 씻는다. 각자 신문을 보고, 각자 밥을 먹는다. 더러는 밥을 같이 먹는 가정도 있을 수 있으나 사실 이러한 풍경은 점점 보기 힘들어진다. 그만큼 삶이 각박해지기 때문이다. 나중 아침을 같이 먹는 가정은 TVn에서 방영하는 응답하라 시리즈물 같은 드라마에서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아침은 모두에게 바쁘다. 입으로는 밥을 먹고, 귀로는 드라마를 들으며 눈으로는 스마트폰을 본다.


그렇게 출근하면 기다리는 건 미어터지는 지옥철이다. 아침 지하철을 타본지는 꽤 됐지만, 아침의 지하철은 고통 그 자체였다.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순간 피곤이 밀려온다. 표를 끊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줄을 서 있어도 많은 인원. 그런데 도착한 지하철 문이 열리면 콩나물시루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도 작은 한숨을 내쉬고 지하철에 탑승해 있는 사람들도 작은 한숨을 쉰다. 탑승해 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만 타 줬으면 하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본다. 하지만 이 지하철을 타지 않으면 지각이다. 꾸역거리며 뒷사람에 의지해 밀려들어온다. 파도가 밀려들 듯이 해일이 밀려들 듯이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희한한 것은 안쪽에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타있어도 그들 사이에 이 인원들이 모두 탈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자갈로 가득 채운 잔에 이제는 더 채울 수가 없다라고 호언장담하던 이가 틈새로 모래가 채워지는 것을 보고 탄성을 지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모래가 끝이 아니다. 마침내 물이 부어진다.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잔. 하지만 잔은 깨지지 않는다. 출근시간 아침의 지하철은 이 잔과 같다.



D2H_4570.jpg 아비규환.seoul.2008



혹시나 이러한 아비 규한에서 지하철을 타지 못한 불운한 자를 위해 90년대까지는 지하철 푸시맨이라는 것이 있었다. 푸시맨은 지하철 안쪽에 엉겨 붙어 있는 사람들을 밀어서 지하철 문을 닫는 일을 하곤 했다. 푸시맨은 출근길 지옥철에 물을 들이붓는 전지 자였다. 자신은 태연스레 타지 않으며 출근하는 이들을 들이민다. 이들은 이미 출근지에 도착한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이렇게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마치 모래사막에 얼굴만 내어놓고 묻혀버린 범죄자와 같은 꼴을 하고 있다. 혹시나 누군가 내리지 않을까 기대하고 내리는 이의 옷자락에 이어폰 줄이라도 걸려 이어폰이 망가지는 날은 꽤나 재수가 없는 날이다. 다음 역이 내릴 역이라면 우리는 한바탕 전쟁을 치를 만반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중앙에서 출입문까지의 거리는 지척도 되지 않지만 걸어가는 시간은 꿈에서 칼을 들고 쫓아오는 귀신을 만나 도망칠 때의 힘겨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이 작은 공간에 모두 함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도시의 섬에 살고 있다. 모두가 외롭다.


지하철에서 내린다고 이 외로움에서 해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출근은 우리를 섬이 아닌 무인도에 당도시킨다. 피라미드식 계급 구조는 모두를 경쟁자로 만들어버린다. 협동을 강조하고 워크숍을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것을 인지한다. 마치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경쟁자 두 명을 한 팀으로 만들어서 협동하게 한 후 결국 둘 중 한 명을 떨어트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며 칼 없는 날카로움이다. 종이에 베인 상처는 두고두고 아프다. 우리는 모두 종이칼을 들고 다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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