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를 부탁해 외로움에 길들여지다

날 때부터 버림받았던 녀석이라 눈에는 두려움과 그리움이 공존했다

by 감성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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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회식과 야근은 업무의 연장선이다. 술을 한잔 나누고 서로의 속내를 들으며 웃고 떠든다. 선임들의 건배사가 오고 가고 때에 따라서는 강요되는 원샷 뒤에 일동 박수를 치기도 한다.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다. 때에 따라 돌아가며 건배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어디서 그런 단어들을 수집해왔는지 미사여구의 어록들이 쏟아져 나온다. 돈을 주는 너희들을 위해 나는 뼈를 깎는 노력과 내 모든 것을 쏟아낼 준비가 되어있다는 복종의 페로몬을 마구 발산해야 한다. 그들은 웃고 떠드는 사이 서로를 경계한다. 모두들 술의 힘을 빌어 속내를 드러내는 듯 하지만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미묘하고도 앙칼진 전쟁은 계속된다. 슬그머니 웃으며 농을 건네는 얼굴, 술을 따라주는 손짓, 어깨를 두들겨주는 눈빛, 모두 잘될 거라는 말 모두 각자의 사회적 페르소나가 여실히 발현되는 순간이다. 2시간여의 회식은 마치 2시간짜리 연극무대처럼 활기차다. 2시간의 연극은 배우와 관객을 모두 지치게 하지만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뮤지컬 전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마이크를 들고 뮤지컬에 돌입한다. 뮤지컬은 연극보다는 조금 더 고난도이다. 이번에는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에서 끝나지 않는다. 요즘 한창 국가에서 장려하는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처럼 각자는 율동을 하거나 박수를 치며 배우의 노래에 참여해야 한다. 사생팬처럼 얼마나 배우의 취향과 스타일을 잘 파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팬클럽 탈퇴가 될지 지속될지가 결정 난다. 이는 매우 농밀하고도 소리 없는 시험이다. 한편의 기괴한 뮤지컬이 끝나면 객석은 텅 비고 스산한 정적만 감도는 극장이 보인다. 극장은 우리의 마음이다. 한바탕의 쇼는 모두의 마음을 비게 만든다. 그들은 모두 도시의 섬에 살고 있다.


초인종을 누르고 귀가한 집은 고요하다. 조그만 백열등 하나만이 거실을 비추고 있다. 모든 가족들이 잠든 시간 또다시 모두는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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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이라고 쓰인 펜던트를 목에 건 이 녀석의 눈빛에는 이러한 외로움이 담겨있었다. 외로움이 한 움큼 밀려오다 보니 두려움이 다가와도 등 돌려 버리기엔 외로운 감정이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손 내밀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손을 내밀기에 나는 너무 위험해 보였던 것이다. 유심히 지켜보던 그 녀석을 나는 할 수 없이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다.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었지만 기다리다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앞발로 버팅기며 몸을 뒤쪽으로 제치며 잠시 저항했지만 그 저항의 힘은 그리 크지 않았다. 뒤로 버팅기는 듯 싶더니 살짝 당기는 힘을 풀어주자 머뭇거리더니 앞으로 달려왔다. 목덜미를 살짝 잡자 금세 앞발을 모으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린다.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꽤나 재미있는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목덜미이다. 머리와 몸통 사이에 야들야들한 목덜미 부분을 잡게 되면 금세 편안해진 눈빛을 보내며 바닥에 있을 때는 앞발을 모으고 몸을 바닥에 붙인다. 땅에서 떨어져 있을 때에는 앞발과 뒷발의 힘을 완전히 풀어버리고 몸도 이완된 채로 세상 포기한 듯 몸을 맡긴다. 이는 아마 어릴 때 어미가 새끼들을 옮길 때 목덜미를 물어서 옮기는 것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습관은 본능적이고도 원초적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이러한 본능적 태도들은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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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녀석 신기하다. 목덜미를 20여 초간 붙잡고 눈을 가만히 보며 ‘반가워’라고 인사를 하고 마음을 전달했더니 목덜미를 놓아주어도 어디가지 않는다. 아니 몇 번을 쓰다듬어주니 바로 장난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앞발로 내 손을 움켜잡더니 손가락을 아이 같은 이빨로 물 어재 낀다. 급기야는 몸을 뒤집고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정말 말 그대로 앙앙 거리며 물었다 풀었다를 하고 논다.


그 뒤로 우리는 매우 친한 사이가 되었는데, 이 녀석 오랜만에 가도 매번 날 알아보는 게 신기하다. 다른 이들이 쫓아오면 한달음에 20여 미터를 꽁무니를 빼다가 뒤를 슬쩍 돌아보곤 하다가도 내가 가면 반기는 것은 아니지만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다. 가서 앞에 쪼그려 앉으면 주위를 맴돌면서 몸을 치근댄다. 이 녀석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이 고양이가 농기센터에서 이렇게 살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센터 직원 한 명이 어느 날 밥을 먹고 올라오고 있었는데, 앞에 큰 박스가 하나 있었단다. 그래서 그 박스를 열어보니 이제 태어나서 제대로 눈도 못 뜨는 녀석을 누가 버려놨다고 한다. 이 녀석을 불쌍히 여겨 센터 직원들이 십시일반 사료도 사고, 집도 사고, 이렇게 키우고 있는 것이었다.

날 때부터 버림받은 녀석이라 눈에는 두려움과 그리움이 공존했다. 앞으로 또다시 버림받지 않고 행복하길 바라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