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창작활동소를 발견하다
봉숙아~ 말라고 집에 드갈라고~♪
끈적하고 고풍적이며 맛깔나는 <봉숙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가사가 참 재미있는 이 노래를 부른 그룹은 <장미여관>. 처음에 <장미여관>이라는 그룹 이름을 들었을 때 흡사 7~80년대 무명 화가의 손끝에서 완성된 구닥다리 영화 포스터가 떠올랐다. 장미여관이라니 그 얼마나 촌스러운 이름인가. 왜 이렇게 이름이 촌스러운지 보니 바로 ‘여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렇다.
여행문화가 많아지면서 요즘엔 모텔, 호텔, 펜션 등 여러 숙박시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호화로운 숙박시설이 생겨나기 전의 시대에는 여관이 주(主)를 이루었다. 그리고 여관은 지금의 모텔이나 호텔 등과 다르게 동네마다 수수하게 위치하고 있었다. 붉은 원위에 3개의 수증기 표시. 목욕탕 표시와 동일한 여관의 표시는 오래된 동네라면 모두들 하나씩 가지고 있던 추억의 산물이다.
여관은 추억과 이별의 장소로 사용된다
영화에서도 여관은 추억과 이별의 장소로 사용된다. 남 주인공과 여 주인공은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날 좁은 우산 속에서 비를 맞으며 곧 찾아올 이별을 슬퍼한다. 빗속에서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슬픔들이 눈길사이로 가득 흐르면 어느새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여관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그렇게 남녀 주인공은 이별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이다.
예술가의 창작활동장소 수덕여관
수덕여관은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 활동의 근거지
여기에 또 하나의 여관의 모습이 있다. 예술가의 창작활동장소. 바로 수덕여관이다. 수덕여관은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하던 근거지였다. 본관은 충남 예산 수덕사 입구에 당도하기 50 여미터전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 찾아가는 이들도 단번에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여관은 아름답고 독특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여관터로 올라갈 수 있는 10여 걸음 정도의 돌계단이 위치하고 있다. 돌계단 위에는 이끼가 끼어 청록색 빛을 알맞게 띠는 네모난 돌판 위에 음각으로 ‘수덕여관’이라고 적혀있다.
돌 간판 뒤편으로 드디어 수덕여관의 모습이 드러냈다. 짙은 베이지톤의 흙벽, 집을 떠받치고 있는 돌담, 지붕을 이루고 있는 노란 짚등. 여러 재료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관의 색은 온전한 세피아톤이었다. 보통 사진에 추억이나 옛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세피아 필터를 많이 쓰긴 하지만 이곳 여관은 그 자체로도 옛 추억을 가득 담고 있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여관 옆에 곧게 뻗은 나무들과 바닥에 녹아 얼어버린 하얀 눈과 얼음 등은 수덕여관의 전체적인 풍경을 완성시켜주고 있었다.
2월. 겨울을 지나 한창 봄이 찾아오려고 요동치는 시기였다. 수덕여관은 이맘때쯤이 가장 아름다운듯하다. 바닥의 눈과 수덕여관의 풍경을 완성시켜주는 고드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 2월의 수덕여관에는 고드름이 금줄에 달린 고추처럼 줄줄이 매달려있었다. 요즘 같이 처마가 없는 시대 우리는 대체 어디서 이런 고드름을 보겠는가.
고드름이 세상을 담고 있었다
고드름이 처마마다 달려 있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던 물방울들은 서로를 부둥켜 앉고 그렇게 울다 지쳐 고드름이 되었다. 세상의 슬픔, 아픔, 분노, 오욕의 감정을 모두 갈무리하고 그들은 그 무엇보다 투명하게 다시 태어났다. 날카로운 칼날은 아래로 향하고 그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안에서 나는 이응노 화백의 예술적 고뇌와 고독함을 보았다.
수덕여관이라는 현판이 정겨웠다. 현판 아래로는 요즘으로 치면 베란다라고 할 수 있는 간이 평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응노 화백은 이곳에서 수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특히나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는 작품들을 많이 시도했다고 한다. 여관 창문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이응노 화백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여관을 둘러보면서 아마 이런 환경이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관은 담담하고 끊임없이 아름다웠고 예술적 영감을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고요한 풍경 속으로 새 한 마리가 지나갔다. 풍경의 고요함을 깰까 봐 새마저도 고요히 지나갔다. 새는 지붕을 스치고 하늘 그림자를 피해 유유히 사라졌다. 새와 하늘 그리고 앙상한 가지 사이에 움트는 새순들은 하나의 콜라보를 이루어 보는 이의 마음에 감정의 새순을 싹트게 했다.
여관의 안쪽은 참으로 수더분했다.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ㄷ' 자 형태의 초가가 감싸고 있었다. 여관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으면 자그마한 농가라고 해도 될듯했다. 그래도 예술적 풍미는 가득했다. 하늘로 길게 뻗은 나무와 바람을 맞으며 쉴 수 있는 아름드리 평상. 맑은 공기, 푸른 하늘, 옛날식 유리 미닫이문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예술활동에 집중했던 화백의 당시 느낌에 감응할 수 있었다.
이런 고풍스러운 집들을 찾게 되면 마지막으로 유심히 보는 것은 바로 문고리이다. 특히 옛시대의 문고리들은 둥글둥글한 아름다움에 적당히 녹이 슨 맛이 일품인데, 이러한 문고리에 한번 맛 들리면 문고리들만 찾아다니게 된다. 물론 이들을 소유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그 멋을 발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전체를 한번 둘러보고 나오니 어느새 봄이 왔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관이라는 이름도 따뜻하지만 여관의 생김새들이 정감을 가득 느끼게 해준다. 수덕사를 올라가려 했으나, 오르기도 전에 수덕여관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진을 다 빼버렸다. 하지만 그러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B급 감성 여행기에도 딱 맞는 그런 곳이었다. 당신의 마음속에 B급 감성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수덕여관에서 머무는 건 어떨까.
ps. 사진가가 바라보는 고품격 내맘대로 여행기 재밌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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