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갑작스레 걸려온 김포 토박이의 전화.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 지역의 전문가들이다.
조그만 똑딱이를 메고 차를 탔다. 차는 시청 쪽을 향했다. 정확히는 시청 입구 오른쪽에 있는 여성회관 쪽이었다. 여성회관 옆은 울퉁불퉁 오르막길로 되어 있었다. 흡사 차라도 댈라치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놓지 않으면 저 아래까지 곤두박이칠 질듯 한 경사였다.
차에서 내리니 흐린 날의 향이 코끝을 스치운다. 하늘은 보일 듯 말듯한 코발트블루와 진한 그레이톤이 섞여 비현실적인 색상으로 도색되어 있었다. 하늘 아래 도시는 시크했고 메 말라보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청량감 가득 넘치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도시의 지친 참새 소리가 아니다. 새는 over the rainbow를 노래하고 있었다.
무지개 너머 저 어딘가
바람결에 들어본 그런 곳이
바로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이다. 덕분에 부드러운 광원이 꽃길 전체를 따뜻하게 감쌌다. 나무토막이 동개진 계단 길은 위쪽까지 끝이 없었다. 마치 하늘로 가는 계단 같았다. 레드 제플린은 stairway to heaven을 부르며 이런 계단을 상상했을까. 양 옆으로는 적당한 굵기의 벚나무들이 행렬을 하듯 나란히 줄 서 있었다. 벚나무에서 꽃들이 만발하고 만개했다. 부끄러운 듯 홍조를 띤 하얀 벚꽃들이 담백하게 피어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벚꽃들이 하늘을 가득 가리고 있어서기도 했지만 벚꽃들은 보는이의 시선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 올라가 보았다. 올라갈수록 진기했다. 벚꽃은 시야각 너머로 바람에 날리고 길의 끝은 하얀 암흑이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이어서일까. 올라가는 길섶에는 조그만 이름 모를 풀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이름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름 없는 장소, 이름 없는 풀꽃, 이름 없는 계단.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천국의 계단>이라고. 나만의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이제 이 길은 비로소 내게 있어서만큼은 그 의미를 가질 것이다.
갑자기 빗방울이 눈썹에 부딪혔다. 가라 앉혔던 감성이 올라왔다. 흐린 날의 하늘은 꾹꾹 부여 앉고 있다가 결국엔 참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뿌옇게 만든다. 살짝살짝 빗방울이 흙을 적신다. 흙에서 비 냄새가 난다. 예전에 흙에서 나는 비 냄새를 가지고 누군가가 향수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마 그 개발자는 이런 아련한 감정을 100여 번쯤 경험했으리라.
비가 오면 떨어질 벚꽃의 아름다움을 기록해야만 했다. 이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의 의무였고, 사진가의 권리였다. 셔터는 말없이 벚꽃들을 잘라냈다. 조리개는 꿈뻑이며 연신 하늘님의 작품을 담았다.
그렇게 비와 벚꽃과 나의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B급 감성 여행기는 계속될 것이며, 세상은 이 똑딱이 카메라 속에서 항상 창조될 것이고 숨 쉴 것이다.
ps. 재밌으셨나요?^^
작자 주: 소제목 <그는 나에게로와 꽃이 되었다> 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문구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 차용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qxk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