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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수필_생활을 관전하다

생활 관전 수필의 시작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가득 부푼 풍선처럼 곧 터질듯한 복어의 배마냥 머릿속이 부풀어 올랐다. 자궁을 돌진하는 수백만 마리의 정자처럼 생각의 편린들이 뇌 속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처럼 비현실적이고 몽상화 되어 있었다. 수많은 소재와 주제, 이야기들이 폭발하듯 머릿속을 굴러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의 해풍을 맞은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가볍게 펜을 잡았다. 마음속 부담감을 덜고 일상의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엄밀히 이야기하면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순간들과 사고의 편린들을 정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글들은 가벼운 이야기라고 하지만 꽤나 진중하고도 무거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라는 미필적 고의는 가지고 있다.     


 일단 가장 간단하고도 명확한 기준을 잡은 것은 ‘쉬운 글’이다. 어려운 글은 나조차도 읽기 싫으니까. 특히 요즘 같은 인터넷 세대들에게 어려운 글이란 길가에 있는 돌멩이와 같다. 별 효용성도 없고 읽히지도 않는 글은 써서 무엇하랴. 그런데 글을 쓰면서 어려운 점 또한 쉽게 쓰는 것이다. 글은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 단어들과 맥으로 써야 한다. 어려운 걸 어렵게 쓰는 거야 누군들 못하랴. 쉽게 풀어쓰지 못한다면 그 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을 것이다.


 이걸 보고 누군가는 네가 이해의 폭이 좁아서 그런 거야 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이 그러한 걸 누굴 탓하겠는가. 우리는 세월의 흐름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물론 단 한 가지. 만약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기준으로 한 ‘긴’ 글을 읽는 것이 싫다면 내 글도 읽힐 수 있는 권리는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바로 주제. 바로 일상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글. 그런데 생각과 감정은 매우 주관적인 소재들이다. 이 소재들을 제 3자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을 닥쳤을 때 그때의 감정에 치우쳐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이후 그 일에 대한 주관적 감정이 사라진 이후 아 그때는 이게 잘못됐었지 이게 잘됐어라고 비로소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명상을 하는 이들은 항상 삶에 대하여 ‘바라보기’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생활을 관전하다 라는 표현을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관전 수필’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이러한 이름에 모티브를 얻은 또 하나의 사실이 있는데, 바로 1970년대 이문구의 ‘관촌수필’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 소설과 관전 수필은 하등의 관련이 없다. 단지 네 단어에서 세단어가 같을 뿐이다. 머릿속에 희미하게 관촌수필이라는 말이 떠다니다가 생겨난 단어가 바로 ‘관전 수필’이다. 관전 수필이라는 네 단어 앞에는 두 글자가 생략이 되었다. (생활) 관전 수필.          



 앞으로 생활을 관전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수필형식으로 가볍게 기재해볼까 한다. 그것은 가벼워야 하지만 때로는 무거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다. 생활을 관전한다는 이야기는 제삼자 적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되,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시점으로 바라본다는 말이다. 그렇게 바라보는 우리들은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흥미로울까.






관전 수필은 매주 '목' 요일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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