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를 통해 보는 관계의 인문학
오랜만에 밀린 ‘미드’를 봤다. 미국 드라마를 줄여서 부르는 ‘미드’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한국 드라마도 요즘 들어 많은 실험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구조는 기승전 사랑 이야기라는 빈축을 사곤 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여러 소재로 시작돼 전개되지만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로 끝나는 전형적 구조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드는 뱀파이어, 유령, 좀비, 범죄 수사 때로는 사후세계를 다루기도 한다. 이들은 탄탄한 스토리와 긴장감으로 한편의 영화처럼 드라마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꾸준히 좋아했던 미드를 몇 꼽으라면 중고등학교 때 밤 11시 공중파에서 방영했던 X파일이다. X파일은 FBI 비밀수사팀인 멀더와 스컬리가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옴니버스형 스릴러물이다. 이 드라마의 주요 주제는 바로 외계인이다. 어린 시절에도 드라마물에 외계인이 등장하는 발상은 매우 놀라웠다. 이는 마치 90년대 초 우리나라의 트롯과 발라드를 듣다가 갑자기 일본 X-japan의 멜로디 라인이 강력한 음악을 들었을 때의 충격과 흡사했다.
멀더의 여동생은 어린 시절 외계인에게 납치가 되고, 스컬리는 외계인에게 잡혀가 임신을 한다. 이러한 일련의 동기유발을 통해 멀더는 외계인에 집착하게 되고 FBI에 입사해 X파일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드라마의 재미는 외계인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매우 비밀스럽고도 흥미진진하게 다루었다는 점과, 소위 감에 의존하는 직관적 판단의 소유자인 멀더와 지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의 소유자인 스컬 리가 사사건건 부딪혀가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심리적인 라인이다. 멀더와 스컬리는 꽤나 오랜 시즌 동안 이 팽팽한 구도를 유지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않았다. 그 점이 오히려 긴장관계를 유지시켜준 것이 아닐까 한다. 아마 X파일이라는 드라마는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듯하다. 꽤나 많은 시즌이 나왔으니 말이다.
또 하나의 인상 깊었던 미드는 ‘슈퍼내추럴’이다.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면 ‘초자연적인’ 정도 될것이다. 드라마는 주인공 샘과 딘이 악마퇴치를 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샘과 딘은 어린 시절 노란 눈을 가진 악마에게 어머니를 잃는다. 이에 분노한 아버지는 그 악마를 찾아다니고, 샘과 딘은 아버지와 함께 가업을 승계하여 악마퇴치를 한다. 로드무비 형태의 이 영화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신문에 보도가 난 사건들 중 불가사의하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을 찾아다니는 샘과 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은 용감무쌍하게 악마들을 단칼에 처치하고 유유히 다음 여정으로 떠난다. 시즌이 거듭해갈수록 퇴마 이야기는 스케일이 커진다. 이 두 형제의 이야기에 천국과 지옥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악마들은 지옥을 개방하여 세상의 멸망을 가져오려 하고, 천사들은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샘과 딘은 천사들과 악마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며, 스토리의 스케일은 점점 커져간다. 아직 시즌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떤 흐름으로 흘러갈지는 기대해봐야 할 것이다.
미드에는 각각의 뚜렷한 세계관이 있다
그 이외에도 미드는 여러 판타스틱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미드를 보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악마, 뱀파이어 남자친구가 매우 일상적으로 보인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상적이지 않는 사건들이 영화들에서는 우리가 버스를 타고 밥을 먹듯 자연스레 일어난다. 그들에게 악마는 무서워서 도망가야 할 상대가 아닌 단지 처치해야 할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이며, 뱀파이어는 내 피를 앗아갈 무서운 존재가 아닌 매력적인 남자친구 역할을 해줄 뿐이다. 그래서인지 미드를 오랜 시즌 동안 보게 되면 주인공과 마치 오래전부터 친했던 것 같은 느낌을 가지며, 현실세계에 이런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든다.
이렇게 각각의 미드는 그들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 허구의 세계 속에서 온전히 존재한다. 그 세계 속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 세계관을 이해한다. 하지만 만약 두 개의 미드를 섞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슈퍼내추럴’과 메디컬 휴먼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주인공들이 하나의 공간에 있다면. 물론 훌륭한 작가들이 스토리는 연결시킬 수 있겠지만 주인공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람도 모두 각자의 세계관이 있다.
사람들은 어찌 보면 각자의 드라마 속에서 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미드처럼 사람들도 각자의 세계속에서 살아간다. 모두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범위가 다르다.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나오는 주인공에게 ‘이 세상에는 악마와 천국의 문이 열려 수백수천 명의 악마와 천사들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라고 이야기해봤자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옳은 기준이다 하더라도 다른 세계관에 살고 있는 상대방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소리일 뿐이다. 각자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해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히스토리가 축척되어 왔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라는 말을 한다. 같은 관점을 가진 이들끼리 자석처럼 끌리는 것이다.
예전에 들었던 한 스님의 법문 중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여러분. 과일가게를 가보세요. 사과는 사과대로 진열돼 있고, 배는 배대로 진열돼 있죠? 사과가 배 진열되어 있는 곳에 놓여 있는 것 봤나요? 아니면 반대로 배가 사과 진열돼 있는 데에 놓여 있는 것 봤나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나와 연관돼 있는 가족들, 형제들, 친구들 그 사람들이 미울지 모르겠지만 다 여러분과 같은 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난 겁니다. 남 탓할 필요 없어요.”
그 당시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의 행간과 주제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 그러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이 만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와 같지 않은 누군가와 꽤나 오랫동안 혹은 몇 회의 만남을 가질 때가 있다. 이때 우리들은 다른 세상 속 교집합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집합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만남을 지속할 수 없다. 이 교집합은 '관계'라고 불리운다.
관계는 상대방과의 교집합을 늘려가며 형성된다
관계는 이러한 교집합을 늘려감에 따라 발전 되는데, 교집합의 증가는 내가 그 사람과 같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서로의 세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었을 때 교집합의 크기는 커지고 결속도는 단단해진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둘이서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많은 교집합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첨예한 대립이 나올 수 있다. 그런 사유로 원수지간이 되거나 관계의 종점을 찍는 경우가 역사적으로도 많았다. 하지만 화가와 음악가가 만난다면 어떨까. 그들의 세상은 다를 지 몰라도 각자의 사고와 재능은 서로에게 훌륭한 도움이 될 수 있다. 혹은 예술가와 마케팅 전문가가 만났을 때도 꽤나 생산적인 조합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사고방식들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관계가 꼭 훌륭하게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서로를 보충시켜줌으로써 발생시켜주는 시너지 효과는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같은 세계이든, 다른 세계이든 관계를 맺음에 있어 얼마큼 중화시킬 교집합의 밑바탕을 만들어 놓을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러한 교집합을 늘리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부드러워 져야 한다. 커다란 돌맹이로 한컵의 잔을 채우는 것보단 모래로 채우는 것이 빈공간이 적다. 그만큼 우리는 관계에 있어 세밀하고 세심해져야 한다. 그리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과의 교집합을 늘릴 수 있다. 교집합의 증가는 내 범위를 늘이거나 상대방의 범위를 늘리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얼마나 상대방의 범위에서 빈곳을 찾아 채워 줄 수 있는지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
결국 나(我)라는 말은 관계자체가 되야한다. 즉 관계와 내가 다름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관계는 부드러워지고 나는 점점 더 확장된다. 이것이 관계의 핵심이다.
ps1 <관전 수필>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ps2 <관전 수필>은 생활을 관전하며 느끼는 단상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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