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적요는 은교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을까
요즘 날이 따뜻해져서 거리를 종종 걸어 다니곤 한다. 거닐다 보면 눈에 띄게 여인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바람에 나부껴 하늘거리는 민들레 홀씨같이 시스루룩을 입는가 하면 짧고 타이트한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TV에 방영되는 연예 프로그램들의 영향이 커서일까.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이 점점 과감해지고, 화장도 점점 진해진다.
얼마 전 집 앞 사거리길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짧은 핫팬츠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한 여성을 보았다. 대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앳된 분위기가 풍기는 그녀. 흑갈색 스트레이트 머리에 벚꽃처럼 새하얗얀 계란형 얼굴이 보였다. 파우더를 듬뿍 칠해 일본 가부키에 등장하는 배우 같은 모습. 멀리서도 땀구멍이나 잡티 하나 보이지 않을 얼굴, 잘록한 허리가 드러나는 딱 붙는 티셔츠, 오뚝한 코 아래에 조그맣고 앙증맞은 입술. 선명하고도 붉은 선홍색의 루주. 그녀의 모습은 마치 생명의 기운을 가득 품은듯했다. 새하얀 얼굴에 선홍색 립스틱. 그녀는 그렇게 화장한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못내 부끄러운지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을 건너는 여인을 보며 왠지 그녀는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는 듯했다. 자연스럽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훨씬 매력적인 나이.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잘 모르는 시기, 보편적 성숙함이 더 좋아 보이는 때. 누군가에게 성숙한 매력을 내 보이고 싶은 욕심. 그건 아마도 그녀가 아직 갓 피어난 새순처럼 젊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아마 연상의 남자를 좋아할지 모르겠다. 나이가 비슷한 이성친구들은 어쩐지 유치하고 말이 통하지 않아 라고 푸념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 갓 법적 성인이 된 자신을 이미 성인의 카테고리에 넣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살면서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어요
반대로 얼마 전 TV 프로그램 토크쇼에 한 여자 중년 연예인이 나와서 ‘나는 살면서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 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어요.’라는 말을 농담조로 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듦에 대해 일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날이 풀리고 새가 우는 사이 아름다운 향을 품은 꽃들이 만개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때가 있는 법. 꽃은 지고 계절은 바뀐다. 사람들이 슬퍼하는 이유는 지는 봄꽃처럼 내 육체가 시들어감이 서글퍼서일까. 아니다 그보단 나이 들며 느끼는 육체와 정신의 괴리감 때문이라는 말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 몸은 노쇠하지만 우리의 기억과 사고는 젊음의 추억을 기반 삼아 정지되어 있다.
영화 ‘은교’에서는 젊은 기억을 보유한 늙은 시인 이적요가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적요는 발가벗은 채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쳐다본다. 검버섯이 가득 피어있는 목덜미, 축 처져 탄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슴. 쭈글거리는 피부. 이미 많은 세월을 거쳐 병들고 시들어버린 변변치 못한 몸. 이적요의 주름 가득한 눈빛은 깊은 회한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이적요는 사회적 위치와 명성을 모두 갖추었지만 그 모든 것들로도 얻지 못하는 젊음을 갈구한다.
이에 반해 그와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제자 서지우는 잘생긴 훈남이며 글을 쓰는 작가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별’은 모두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를 이해하는데 10년이 걸릴 만큼 문학적 재능이 없는 공학도 출신이다. 그는 <심장>이란 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나오지만 그마저도 스승이 대신 써준 원고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는 스승의 천재적인 재능을 항상 질투한다.
그들의 앞에 어느 날 고등학생 은교가 나타난다. 하얀색이다. 당돌하다. 뭍에 나온 물고기가 퍼덕이는듯한 생동감. 풍부한 감수성, 하얀 얼굴과 하얀 손목, 하얀 발목에서 풍기는 본인도 모르는 미묘한 매력. 그녀는 젊음 그 자체였다.
이적요는 50년이 넘게 차이나는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 매력은 여성으로의 매력을 넘어선 순수한 젊음에 대한 매력이다. 본인은 앞으로도 절대 가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은교는 오오라처럼 온몸 한가득 뿜어내고 있다. 그녀는 서슴없이 늙은 시인에게 다가가고, 늙은 시인은 은교의 허벅지에 누워 눈을 감고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환상과 몽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환상 속에서 이적요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본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던 나이, 모든 것이 다 가능했던 시절. 하지만 행복한 꿈에서 깨어난 비정한 현실은 이적요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제자 서지우는 <심장>이라는 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그에게는 심장이 없다. 이적요가 써준 소설로 유명해진 그는 항상 불안하고 재능에 목말라 있다. 거기다 심지어 스승이 비공개작으로 쓴 <은교>라는 글의 원고를 자기 이름으로 제출해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한다. 그는 항상 콤플렉스에 쌓여 사는 이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진한 콤플렉스가 그의 눈을 가리고 그의 행동을 병들게 한다. 그는 결핍이라는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은 거짓된 삶에서 시작되었다. 은교와의 육체적 관계까지도 거짓을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이다. 그는 거짓의 삶을 바라지 않았지만 결핍과 콤플렉스로 거짓의 삶을 숙명처럼 부여받게 된다.
이적요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은교라는 고등학생을 매개체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사실 결핍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적요가 가지고 있는 젊음에 대한 결핍, 서지우가 가지고 있는 재능에 대한 결핍. 이러한 결핍에 대해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예민하고도 민감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루지 못한 결핍에서 행복을 갈구한다
우리는 이렇게 이루지 못한 결핍에서 행복을 갈구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환상이거나 과거에 누렸던 망령 중 하나일 것이다. 욕망의 마차를 채찍질하면 달리는 말들은 미치광이가 되어 날뛴다. 채찍을 휘두르며 속도를 내던 마부는 어느 순간 고삐를 놓치고 만다. 그래서 결핍에 따른 욕망이 심해지면 비인간적인 행태로 발현되거나 파국으로 치닫곤 한다.
이러한 결핍에 대한 집착은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어떤 인류도 공기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경제학에서도 공기는 기회비용이 전혀 없는 자유재로서 인간의 욕망에 대한 희소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기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공기가 너무 먼 이야기라면 건강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1여 년 전부터 앉아서 일하는 업무의 비중이 꽤나 늘어났다. 덕분에 10여 킬로그램의 지방 덩이들을 원치 않게 초대하게 되었다. 몸무게 증가는 여기저기 몸의 변화를 가지고 왔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올랐고 아침엔 지속적인 숙취의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단어에 지나지 않았던 ‘죽음’은 언제든지 삶이 로그아웃될 수 있다는 현실적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건강에 대해 중한 인식을 할 필요가 없었던 몇 년 전에는 다른 가치들-타인에게 멋지게 보이는 방법 이라던지 좀 더 비싼 자동차를 산다던지 등-을 좇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당연히 가지고 있던 건강이라는 가치를 주춧돌 삼아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결핍된 건강에서 행복감을 찾는다. 그와 함께 생각의 변화가 찾아왔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삶의 조금 더 본질적인 부분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꽤나 오랜 삶의 숙제였다. 하지만 반복되는 삶 속 안착해버리는 게으름과 수동적인 태도는 생각을 실천하기 부족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난 비로소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결핍에서 행복을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지라 어쩔 수 없다. 가진 것에 대해 행복을 느끼라고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강연자들은 항상 말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기본적 본성인지라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질료를 통해 삶을 관조하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꾀할 수는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나마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방법적 측면에서 인간의 본성을 바꿔가면서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본성에 순응해가며 물 흐르듯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
[관전수필]은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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