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살아남기 #1
UCI DCE ACP 수업을 들을 때 수업 중 하나에 Project Management(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수업이 있었다.애자일.. 스프린트.. 워터폴.. 이런 개념들을 배웠다.
테크 업계 경력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용어들이 꽤나 생소했지만,
배우는 것들의 내용은 이미 익숙한 것이었다
그냥, 지난 7년 동안 AE로서 내가 했던 일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스케줄링을 하고, 수많은 벤더들과 소통하고,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을 반영하고, 또 소통하고, 또 일정관리를 하고, 우리의 프로젝트가 계획된 일정으로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체크하는 일련의 아주 아주 익숙한 과정들.
게다가 나의 마지막 직책은 PM이었다.
Project Manager 프로젝트 매니저
홍보 에이전시였던 나의 옛 회사는 PM제도를 도입했었다. 몇 개의 팀을 합쳐 큰 부문으로 만들고 팀과 부문을 넘나들어 프로젝트 당 TFT를 짜서 운영하는 체제로 가겠다는 의미였다. 원론적으로는 클라이언트 규모와 개인의 성과에 따라 사원도 PM이 될 수 있고, 과장도 팀원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동시에 최대 7~8개의 프로젝트까지 담당했던 ‘PM’으로서, 그 당시 내가 이해했던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은 팀장이었다.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의 대장.
그랬던 내가 미국의 대학에 와서 Project Management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수업을 들으며, 프로젝트 스케줄 짜는 법을 배우고 과제를 하자니 처음에는 오? 이거 나 완전 잘하는 거~ 하면서 쉽게 했다. 과제는 그냥 회사 다닐 때 썼던 아주 익숙한 견적서, 스케줄러 포맷들을 그냥 썼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사실 경영 대학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던 나는 이런 건 그냥 실무에서 다들 이렇게 하는 하는 거 아닌가? 이거를..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건가? 이거 그냥 다들 하는 거 아니야? 싶었다.
그러다, 나의 정체성 혼란은 미국에 Project Manager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게 내가 있던 업계처럼 프로젝트를 여러 가지 하는 회사에서 프로젝트 캡틴의 의미가 아니라, 정말 일정을 조율하고, 각 부서 사이의 소통을 하고, 프로젝트가 일정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검토를 하는, 정말 프로젝트를 매니징하는 직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내가 기획도 하고, 제작도 하고, 컨펌도 하고, 클라이언트 소통도 하고, 프로젝트 매니징도 했었는데, 프로젝트 매니징만 하는 일이 있다는 거지? 그게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게 가능한가? 하는, 아주 협소한 경험에만 기반한 협소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같은 클래스에 있던 한국의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 수십 년의 경력이 있으신 분께 여쭤보기도 했다. “이거 한국에서는 그냥 다.. 알아서 하는 일 아니에요? 팀장 되면 하는 일 아니에요? 프로젝트 일정 관리하고.. 소통하고.. 그런 것들을 이렇게 과목으로 배우는 건 처음이에요 “
그 당시 그분은 “한국에서는 아직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업이 많지 않은 것 것 같다. 보통 실무하는 사람이 그것도 다 하고, 사실 그냥 우리는 그게 팀장 일이지 뭐“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미국 놈들, 한국 가서 6개월만 굴러보라지, 이런 것도 뭐 직업이라고 따로 배우고 따로 직무가 있어? 일정 짜는 거, 일정 지키는 거, 팔로업 하는 거 누가 못해. 이걸 왜 못해. 공 놓고 공치듯이 일해본 사람이면 이런 거 다 하는 거지.”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미국의 공간 디자인 & 공사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매일매일 너 이거 했니, 너 저거 했니, 언제 할 거니 일정 닦달하는 전화와 문자를 하고, 읽을 줄도 모르는 도면을 펼쳐 놓고, 이해도 안 되는 건축 공사 용어들을 배워가며, 매일매일 현타를 겪으며, 말이 좋아 PM이지 그게 다 잡일 하는 거라는 소리도 듣고, PM은 전문직이 아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근데 또 일정을 짜고 지키는 것이 그냥 정말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는 USC에서 대학원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충분히 전문성이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향후 전망이 좋은 분야라는 의견을 들었으며, 글로벌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협회 PMI(Project Management institute)의 LA지부 네트워킹 이벤트에서 Design&Construction PM이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는 미국식 PM이 되었다.
아직도 사실 PM이 뭔지, 이게 과연 전문직으로서 내 커리어를 계속 가져갈 수 있는 일인지, 이 일을 내가 정말 좋아하는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이건 내가 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PM이라는 직무에 혼란이 올 때 우리 형부가 해 준 말이 있다.
나한테 쉽다는 것은 내가 잘한다는 거야.
내가 쉽다고 남들도 쉬운 게 아니야.
그게 재능이야.
It means you have talent.
내가 잘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 일에 애정을 조금씩 다시 갖기까지.. 프로젝트 매니저 입덕 부정기를 한 2년 정도 겪었던 것 같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직책이 PM이었으면서 미국에 와서 오히려 신입 사원 시절보다 더 많이 헤맸고, 여전히 헤매고 있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프로젝트 매니저 입덕 부정기 극복 과정과 현타의 반복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프로젝트 매니저의 차이에 대한 아주아주 개인적인 의견들을 한 번 풀어보려 한다.
내가 나와 싸우는 나만 아는 나만의 이 치열한 현재의 하루하루가, 미래의 나에게 언젠가 낙서 같은 길잡이가 될지도 모르니까.
4년 전의 글을 발견한 지금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