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살아남기 #2
오전 8시 출근한다. 오늘의 To-do list라고 쓰고 어제 퇴근하면서 오늘의 나에게 미룬 일이라고 읽는 것들을 체크한다. 아무리 노션, 슬랙, 구글, 먼데이, 아사나, project manangement 툴이 많아졌다고 해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매일매일 업무 일지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해야 할 일을 적어 내려 갔던 신입사원의 습관이 9년 차 직장인에게도 유지되고 있다.
엄마아빠는 내가 첫 직장에 출근을 할 때부터 퇴사할 때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셨다. 애매한 AE, 나는 기자들도 만나고, SNS 콘텐츠도 만들고, 촬영 현장도 가고, 직접 촬영을 하기도 하고, 직접 촬영을 당하기도 하고, 직접 기사도 쓰고, 소셜 콘텐츠 기획도 하고, 인플루언서 컨택도 하고, 인플루언서에게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글을 쓰기도 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엄마아빠는 아~ 그래서 광고 만드는 거야? 했다. TV에 나오는 광고들을 보며 저런 거 만드는 거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 저거는 아닌데 ~ 비슷한 거 하는 거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하고 나서 우리나라 굴지의 푸른 피의 대기업 본사와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엄마아빠는 주변사람들에게 '우리 딸 광고회사 다녀'가 아니라 '샘숭이랑 일해'라며 내가 하는 일을 그렇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Aㅏ... 그것도 제가 하나요? Eㅔ.... 그것도 제가 하나요? 의 AE기간을 지나, 약간의 공백기를 가지고 지금은 Pㅏ.... 그것도 제가 하나요? Mㅔ.... 그것도 제가 하나요? 하는 PM으로 일하고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 참으로 애매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를 매니징 하는데? 어떤 일을 하든 설사 그게 1인 기업 혹은 1인 편의점이라도 모든 일에는 프로젝트가 있다. 백수시절에도 프로젝트는 되게 많았다. 아침에 잘 일어나기 프로젝트, 점심 도시락 싸기 프로젝트, 뭐 그런 것들. 프로젝트 매니저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잘 굴러가게 하는 일이다.
AE랑 별반 다르지 않다. 그냥 Aㅏ.... 하던 거를 PㅔMㅔㅁ.... 하게 됐달까.
이방인이 되고 주로 하는 일은 한국기업 혹은 현지의 한인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일이다. 나와 같은 이방인이면서도 한국어가 여전히 편한 그들은 한인 에이전시를 찾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스토어를 기획하고 만들어주는 인테리어 디자인 & 공사 회사의 PM이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고 공사크루는 공사를 한다. 나는 그들이 지금 일정 맞춰 잘하고 있나 체크하고, 본인들의 일에 집중하느라 잊어버린 일들을 챙기고, 너 이거 해 야해 말해주고, 혹은 아무도 하기 싫어해서 둥둥 떠 다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한다.
PM은 약간 잔소리 꾼이다.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이거 했어? 저거 했어? 클라이언트가 이거 말하는데 이거 할래? 저거 할래? 이거 해야 해, 저거 해야 해.
PM은 엄마 같다. 어이구 이거 하랬잖아. 왜 안 했어. 내가 잘 얘기해 볼게. 아니 이거 해야 해. 그럼 누가 해, 할 사람 없어?? 으이구! 내가 할게. 근데, 이거 내 일 아니긴 해. 근데 지금 다들 각자 할 일 있고 바쁘니까. 우리 가족 중에 누군가 해야 하니까. 내가 할게.
정말 엄마 같다. 엄마는 이 가족의 안녕과 유지를 위해 모든 뒤치다꺼리를 해주는데, 아무도 그녀의 중요성을 모른다. 그래서 뭐 하는데? 디자인은 내가 하고 공사는 쟤가 하는데, PM은 뭐 해?
하루는, 현장에 누군가 물었다. 그래서 직책이 뭐예요? 아 저는 프로젝트 매니저예요.
아, 뭐 말이 좋아 프로젝트 매니저지 그냥 잡일 하는 사람이지 뭐.
심장이 마구 뛰고 열이 받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은연중에 느꼈던 것을 누군가 대놓고 내 면전에 말하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얼굴이 빨개지려고 했는데, 꾹 참고, 네, 저희한테 지금 진행하시는 여기 수준은 그냥 너무 작아서 그냥 현장 보러 온 거고요. 큰 프로젝트 위주로 해요. 총괄 팀장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멋없게도 나도 그 사람의 직업을, 그 사람이 일하는 공간을 평가절하해 버렸다. 재수 없게도. 그리고 많이 후회했다. 같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폭발하는 메신저창에서 요청이 들어온다. 디자인팀이 너무 바빠, 이것 좀 팔로 업해 줄 수 있어? 미안. 공사팀이 너무 바빠, 이것 좀 확인해 줄 수 있어?
그래, 내가 해줄게, 근데 그 말은 내가 디자이너의 일도 할 수 있고, 공사팀의 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그래, 나는 잡일 하는 사람이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그 말은 결국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 나는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다.
일이 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방인 여성 직장인 모임 [투룸메이트] & 글쓰기 모임 앱 [은는이가]의 <여름 방학 글쓰기 모임>에 제출한 글입니다.